김학철전집4-태항산록-문학도

더좋은래일 | 2024.04.29 14:35:16 댓글: 0 조회: 86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5032


소설


문학도


1

홍설걸이는 림시공으로 주로 청결차가 쓰레기통을 쳐갈 때 지저분하게 흘린것들을 깨끗이 쓸어담는 일을 하고있었다. 그러니까 청결차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뒤거두매질을 한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남들은 그가 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너절하다고 깔볼수도 있지마는 그는 그나름으로 배짱이 있었다. 언젠가 <<세계지식화보>>에서 빠리의 청결공들이 파업을 하여 그 아름다운 빠리의 거리거리가 온통 쓰레기천지로 되여버린 사진을 본 뒤부터는 그 배짱이 더욱 세여졌었다. 말쑥하게 차린 자기또래의 젊은이들이 젠체하고 자기를 반원형으로 에돌아가는것을 보면 그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내가 아니면 너희들은 쓰레기에 묻혀 살아야 해. 알았니?)

홍성걸이가 한번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있는 일들을 글로 다듬어 적어서-소설의 형식으로 엮어가지고-허허실실로 어느 잡지사에 보내보았더니 뜻밖에도 그것이 게재가 되였었다(본래의 모습을 거의 알아보기가 어려울만큼 수정이 되여있기는 하였지만서도). 단 신기하게도 작자의 이름 석자만은-편집자가 아차실수를 하였는지-한자도 수정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였었다.

이에 고무를 받아서 그는 쓰레기통에다 쓰레기를 퍼담는 일 이상으로 원고지의 칸칸을 글자로 메워나가는 일에 열중하게 되였다. 하건만 그 한편이 첫번이자 마지막으로 다시는 더 게재가 되지 않아서 그는 감질이 나고 짜증이 났다. 나중에는 울화까지 치밀었다.

홍성걸이가 얼마 아니하여 같은 림시공중에서 저와 처지가 비슷한 친구 하나를 발견하게 되였다. 윤창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친구도 첫번이자 마지막으로 글 한편을-소설이라고 일컫기는 외람스러운 글 한편을-발표해보았는데 웬 까닭인지 그후는 아주 감감무소식-함흥차사라는것이였다. 동병상련이랄지 <<다리 부러진 노루 한굴에 모인다>>랄지 아무튼 두 사람은 남달리 상종이 잦게 되였다.

<<우리 끝까지 견지해보자구.>>

<<다시 이를 말인가.>>

낚시군도 단 한마리의 새끼붕어라도 낚아본 늪에는 언제나 미련을 갖기 마련이였다.

<<이게 그래 조화든 일 아니야? 첫말만 명중이 되구... 그 나머지는 다 헛불이라니.>>

<<그러게 말이지.>>

<<여기 무슨 음모가 있는건 아닐가?>>

<<설마한들 그렇게까지야.>>

홍성걸이와 윤창한이는 서로 뜻이 맞아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가깝게 사귀였다. 막연한 친구로 되였다.

<<아니 우리 이럴게 아니라... 어디 가서 지도를 좀 받아보자. 눈먼 놈 갈밭에 든것처럼... 자꾸 헤더듬지만 말구.>>

<<좋겠지. 그렇지만 지도를... 어디 가서 받는다니?>>

<<넨장할, 이왕이면 좀 큼직한데 가 달라붙어보자꾸나. 잔고기가시 세다구... 시시껄렁한것들이 더 젠척하는 법이니까.>>

<<그건 그래.>>

두 사람은 큰마음을 먹고 이름난 소설가 백운산을 한번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거 망신이나 하지 않을가?>>

<<아닌게아니라 좀 켕긴다야.>>

그러나 벼르던것보다는 낳기는 더 쉬웠다. 백운산은 아주 소탈하게 초면의 두 문학청년을 맞아준것이다. 백운산의 거실에는 정면벽에 경고표지 하나가 눈에 띄게 붙여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No smoking, thank you


(오, 외국손님들이 드나드는 모양이구나.)

홍성걸이와 윤창환이는 대번에 짐작하였다.

<<내가 기관지가 좀 좋지 못해서 담배연기를 맡지 못하니까... 이 점을 향해해주기를 바라오.>>

백발이 성성한 백운산이 웃는 얼굴로 미안스레 량해를 구하였다.

<<녜녜, 저희는 애당초부터 담배라는걸 피울줄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욱 좋구.>>

말하고 백운산은 웃으면서 한마디를 덧붙이는것이였다.

<<외국사람들은 가치담배를 <암가치>라구 하지요. 암을 유발한다구 말이요.>>

초면인사를 마친 뒤에 용건으로 들어가서 홍성걸이가 떠듬떠듬 사연을 이야기하고나서

<<...그래 결국은 둘이 다 허허벌판에서 눈보라를 만난것처럼... 향방을 모르구 헤더듬는 셈입지요.>>

하고 말끝을 맺으니 백운산은 유심히 듣고있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발표된것들은 나두 읽어봤는데...>>

<<녜? 선생님께서... 읽어보셨다구요?>>

두 사람은 놀라서 눈들을 크게 떴다. 하찮은 자기들의 이른바 작품을 백운산 같은 대가가 읽어주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던것이다. -두 사람은 다같이 황감한 영광에 휩싸였다.

<<아주 진실하게 반영했더군. 거침없는... 있는 사실 그대루를...>>

<<황감합니다.>>

<<그런데 변변치 못한걸...>>

<<아니아니 정말 잘들 썼어요.>>

백운산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 다시 물었다.

<<그래 그다음것들은 어떤 소재를 취급했던가요?...>>

<<제 그다음것 하나는... 젊은 과부에 관한겁니다. 그리구 또 하나는... 항일전쟁을 다루었구요.>>

<<저는 시어머니, 며느리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구 또 하나는... 항일전쟁을 다루었구요.>>

홍, 윤 량인의 얼굴들이 지지벌개지며 하는 말을 듣고 백운산은 허허 웃었다.

<<인제 알겠소. 왜 그다음것들이 중시를 받지 못했는지.>>

이렇게 허두를 떼여놓고 백운산은 두 사람이 다 깨달을수 있도록 알기 쉬운 말로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처녀작들은 다 자기가 익히 아는 사실을 진실하게 반영했으니까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었어지만... 그다음것들은 그렇지가 못하지요. 아무리 필력이 있더라 해두 익숙하지 못한것을 주관적으루 엮으면 진실감이 부족하단 말이요. 그러니까 편집부의 반응이 랭담한건... 대개 이때문일게요.>>

두 사람은 깨도가 되여서

<<참 그렇겠습니다.>>

<<그런걸 전 또... 멋을 부리느라구... 일부러 그런 소재를 골랐습지요.>>

한마디씩 지껄이고 뒤통수를 긇으니 백운산은 웃음면서

<<초학자들에겐 그것두 다 좋은 경험이지요.>>

말하고 잇달아서

<<독일의 위대한 문학가 괴테가 자기 작품의 주인공의 입을 빌어서 한 말이 있지요. <만약 그 사슬이/ 그대의 진심에서 우러나온것이 아니면 그대는/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한군데다 얽어매지는 못하리라>. -우리 문학도들이 한번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말이지요. 안 그렇게들 생각하오?>>

하고 백운산은 두 젊은 초학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것이였다.


2

<<야 우리가 오늘 결심을 내리길 잘했다.>>

<<누가 아니라니.>>

<<역시 큼직한데 가 달라붙어야 먹을 알이 있다니까.>>

<<백운산은 참말이지 선성 듣던것보다 인물이 더 낫더라.>>

<<옳은 말이야.>>

<<난 인제 정말 신심이 생긴다.>>

<<나두.>>

홍,윤 두 사람이 이와 같이 씩둑씩둑 지껄이며 자전거들을 타고 오는데 맞은편에서 불시에 비까번쩍하는 오토바이 한대가 달려왔다. 그 일본제 <<스즈끼>>를 모는것은 담홍색헬메트를 멋이 찔찔 흐르게 쓴 청년이다. 그 청년이 눈결에 언뜻 두 사람을 알아보자 곧 급정거를 하면서

<<야, 너희들 어디 가니?>>

큰소리로 알은체를 하였다.

<<아니, 너 정태진이 아니야?>>

<<그 자식 참... 깜짝 놀랐네. 난 또 무슨 대단한 량반이 검문을 하는줄 알았다.>>

두 사람이 롱지거리를 하며 각각 자전거에서 내리는데 그 정태진이라는 청년은 오토바이를 그대루 탄채 두발로 땅을 디디고

<<왜 무슨 뒤줄이 켕길 일이라두 했니?>>

하고 마주보며 웃었다.

정태진이도 원래는 홍,윤들과 같은 림시공이였었는데 지난해 봄에 그만두고 무역상인 저의 형을 도와 무슨 장사를 하고있었다.

<<너 이 자식 때벗이를 아주 단단히 했구나.>>

<<기름이 찌르르 흐르잖니?>>

<<아하하! 그러냐?>>

하고 정태진이는 제몸을 한번 굽어보고나서 뽐내는 기색이 아주 없지는 않은투루

<<너희들 별일 없거든 나하구 우리 집에나 가자, 한턱 내마.>>

<<우리 집 사림하는 꼴두 한번 좀 봐야지.>>

하고 두 친구를 끌었다.

<<아닌게아니라 한번 가볼 생각두 없지 않았다.>>

<<가자 가자. 돼지우리에 주석자물쇠를 잠가두 제멋이라는데... 어떡허구 사나 한번 가보자.>>

자전거 두대가 곧 뒤돌아서서 슬렁슬렁 달리는 오토바이를 따라갔다. 값진 새 오토바이와 다 낡은 두 자전거가 대조적으로 눈에 띄여서 잘 어울리지 않는 일행 세 사람이였다.

홍성걸이와 윤창한이는 집들이를 한지 이제 두달밖에 안되였다는, 벼락부자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어마한 새 이층집에 눌리워 목이 움치러지는 느낌이였다.(정태진이는 나이가 근 20살이나 틀리는 형의 집에 얹혀 살았었다) 이 역시 벼락부자냄새가 진동하는듯한 정태진이의 어머니 같은 형수가 치마바람이 나게 달려나와 시동생이 끌고 온 허술한 옷차림의 두 친구를 정도 이상 반갑게 맞아들였다. 집자랑, 세간자랑을 할 대상이 더 없어서 무료해하던중인데 마침 잘 왔다는 기색이 그 얼굴에 환하였다.

<<어서들 올라와요! 아니 무엇들 하구있지?>>

두 총각은 렬등감에 지지눌리우며 주인이 끄는대로 으리으리한 집안에 들어와 권하는 쏘파에 어색스레 걸터앉았다.

(저 형수아주머니만 아니면 이 지경 구속스럽진 않으련만.)

둘이 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자 슬그머니 반감마저 생겼다.

(같잖게 녀편네가 나서서 차치구 포치구 할건 뭐람!)

천연색텔레비죤, 스테레오록음기 따위의 각종 전기용품들로 무슨 전시장처럼 호기롭게 꾸며진 방안에서 떡 벌어진 대접을 받으면서 홍,윤 량인은 불현듯 대비를 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2년 동안 장사를 한 정태진이 형제네 살람살이가 40년 동안 작가생활을 한 백운산을 열곱절두 더 릉가했구나. 아이구!)

그것은 소달구지가 <<도요다>> 5인승과 경주를 하겠다는거나 마찬가지의 웃음거리였다! 특히 윤창환이의 마음눈에는 글자 한자에 1전씩을 받으면서 돋보기를 쓰고 밤을 새워가며 원고지와 씨름을 하는 백운산의 몰골이 가련하기만 하였다.

<<야 그 자식 아주 팔자를 고쳤구나.>>

<<똑 뭐같이 생긴게... 복이 붙을데라군 없는지... 부모산소를 잘 썼냐?>>

<<미꾸라지가 룡된단 말 못 들어?>>

<<넨장할, 이런 세상에 굽석굽석 쓰레기를 치구있다니!>>

<<어째... 회심이 드는가?>>

<<아닌게아니라 회심두 든다야. 다같은 사람인데... 어디가 못났다구... 넨장할!>>

잘 먹었다는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홍,윤 두 친구는 이와같이 씩둑거렸다.

두어주일 가량 지나서의 일이다. 홍성걸이가 백운산이 일깨워 준대로 하나를 써가지고 윤창한이를 찾아 의논하였다.

<<넌 어떻게 됐니? 닌 그럭저럭 하나 뭉뚱그렸는데. 너두 됐거든 우리 백선생한테 한번 갖구 가서 좀 봐줍시사구 하자.>>

<<야야, 어느 하가에 그런 하늘의 별 따기를 하구있겠니! 난 기권했다. 하려거든 너 혼자나 해라.>>

<<이 자식이 오늘... 대낮에 무슨 잠꼬대야?>>

<<정말이라니가. 난 사실 말이지 지금 그럴 경향이 없다. 머리속에 다른게 꼴딱 들어차놔서.>>

<<다른게 꼴딱 들어차?>>

<<그렇다니까.>>

<<그 다른게란게... 뭐 말라뒈진게야 대관절?>>

<<뭔 뭐겠니? 돈벌이할 궁리지! 그 자식 참 깡통대가릴세!>>

<<너 그거 진담이냐?>>

<<내가 언제 너한테 허튼말 하던?>>

홍성걸이는 할 말이 없었다. 기가 막혔다. 입이 썼다.

(한 인간의 의지가 돈이 유혹앞에서 이다지두 취약하다니!)

그는 깊이 탄식하였다. 그러나 곧 또

(하긴 윤창한이의 택한 길이 옳은지두 모르지.) 하고 뒤쳐생각하기도 하였다.

(아니, 난 그래두 끝까지 이 길을 갈테다!)

그리하여 며칠후 홍성걸이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혼자서 백운산을 찾아갔다. 갖고 가는 몇십매 안되는 원고가 희망과 절망이 엇갈려들어서 자꾸 거뿐해졌다 묵직해졌다 하는것 같았다.

<<어째 친구 하나는 떼팽기치구?>>

백운산이 좀 의아스레 묻는 말을 홍성걸이는

<<녜, 저 다른 볼일이 좀 있어서... 같이 오지 못했습니다.>>

하고 얼버무렸다. 바른대로 대답을 올리기가 거북스럽기도 하였거니와 또 그럴 필요도 없을것 같아서였다.

<<이 원고는 내 시간을 내서 읽어볼테니까... 한주일후에 우리 다시 만나서 독후감을 나누기루 합시다.>>

그 한주일이 채 되기전에 홍성걸이는 친구 하나와 갈라지게 되였다. 윤창환이가 사직을 하고 어느 큰 개인상인에게 고용되여 머나먼 광주로 떠나간것이다. 일년에 한두번씩 돌아오게 된다는것이였다.

<<그럼 너 올 때 바나나나 좀 가져오나.>>

<<어렵잖지.>>

<<인제 뱀고기, 원숭이고기 다 먹어보게 됐구나.>>

<<그따위 징그러운걸 누가 먹는다던.>>

<<그래두 광동사람들은 네발 가진것 책상, 걸상만 빼놓구 다 먹구 날아다니는건 비행기만 빼놓구 다 먹는다더라.>>

<<허풍이다 그건, 아하하!...>>

독후감을 나누게 된 날 홍성걸이가 더는 기일수 없어서 백운산선생에게 이실직고를 한즉 백운산은

<<그래요?>>

하고 고개를 기울이고 한동안 생각해보다가

<<사회주의 36년에 이 강토에서 아직두 빈궁을 퇴치 못했으니까... 경제건설에 달라붙는거야 잘하는 일이지요.>>

하고 윤창환이의 행동을 긍정하였다. 그런 연후에 다시

<<그렇지만.>>

하고 <<단서(但书)>>를 붙이고나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우리 문학도들은 단순하게 경제적효률만을 추구할수는 없지요. 우리의 목적은 인민대중에게 정신적재부를 공급하는데 있으니까. 배를 곯으면서두 창작에 몰두한 위대한 작가들의 선례를 우리는 허다하게 알구있거든요. 이건 작가뿐만이 아니지요. 맑스의 례를 들어두 그렇지... 맑스는 원래 철학박사였으니까 당시 그 사회에서 상류계에 속했지요. 하지만 맑스는 그 부유한 생활을 버리구 전당포의 단골손님노릇하는 빈궁한 생활을 택했단 말이요. 자기의 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프로레타리아의 해방사업에 헌신하기 위해서. 그러게 우리 문학도들은 자기의 사업과 생활 문제가 상충할 때는 서슴없이 전자를 택하구 후자를 버려야 한단 말이요. 요만한 각오두 없이 문학도의 대렬에 끼이겠다는건 앉은뱅이가 등산대에 참가하겠다는거나 마찬가지의 웃음거리지요.>>

백운산의 이 몇마디 말에 홍성걸이는 크게 고무되여 자기가 걷고있는 길이 완전히 옳았다는 신심을 더욱더 굳히였다.

홍성걸이가 백운산의 지도를 받아가며 천신만고하여 써낸 단편소설이 어느 문학잡지 한 귀때기에 실리기까지에는 실로 예닐곱달이라는 만만찮은 시간이랄가 세월이랄가가 걸렸었다. 처녀작을 내놓던 때로부터는 무려 2년 반만이였다! 그래도 홍성걸이는 기뻤다. 마치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것 같이 사기가 올랐다. 하늘이 돈짝만하였다. 국수버섯 솟듯할 상투가 없어서 성화가 날 지경이였다.

<<야 임마 한턱 내라.>>

<<그저 뭉때릴 작정이냐?>>

<<내겠니 안 내겠니?>>

<<내마 내마. 이거 놔라, 이야야! 낸다는데두. 내면 되잖나?>>

<<어서 꼿꼿이 불고기집으루 모셔라.>>

<<녜녜... 쩔 맵지요.>>

복새판에 걸려서 한턱인지 두턱인지를 내다보니 지출이 초과되여 적자가 났다.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으라는 속담을 깜박 잊고 그와는 정반대로 쥐같이 벌어서 소같이 먹은것이다. 그래도 홍성걸이는 후회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두번째 작품이 발표된것이 대견하였던것이다.


3

홍성걸이가 낮에는 쓰레기와 씨름하고 밤에는 원고지와 씨름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있는중에 어느덧 음력설이 닥쳐왔다. 객지살이하던 사람들이 설을 쇠러 돌아오느라고 주야로 붐비여서 철도국, 항운국, 자동차부들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계절이 되였다. 어느날 느닷없이 밖에서 누군가

<<있니?>>

명토없이 소리쳐 물어서 홍성걸이가

<<누구야?>>

하고 만년필을 손에 든채 방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누군 누구야? 방자스레... 냉큼 나와 맞아드릴게 아니라!>>

소리를 앞세우고 방안에 들어서는것은 얼른 알아보기가 어려울만큼 모양도 모습도 다 달라진, 신사복을 쭉 뺀 윤창한이였다.

<<어, 너냐?>>

<<어떠냐, 이만했으면> 영업소 부소장 한자리쯤은 문제없지?>>

하고 뻐기면서 윤창한이는

<<옜다 이거.>>

손에 들고 온 선물꾸러미를 앞으로 내밀었다.

<<신분에 알맞게 비행기를 잡숫구 오느라구... 바나나는 못 사왔다 짐이 돼서. 무게의 제한이 이만저만해야지. 하지만 이것두 괜찮은거니 그대루 받아둬라.>>

<<이 자식이 오늘 정말 희구젖히잖나.>>

<<아하하, 괜히 그저 한번 해보는 수작이다. 그렇지만 비행기는 정말 타구 왔다.>>

<<정말? 어디서 어디까지? ...>>

<<어디서 어디까진 어디서 어디까지야, 광주서 심양까지지.>>

<<그럼 심양서는?...>>

<<심양서야 물론 기차를 탔지. 그렇지만 난생처음 이번에 연석을 타봤다. 비행기구 연석이구 타는 맛이 다 그저그만이더라야.>>

<<시골뜨기가 얼떨떨했을테지. 촌닭 관청에 잡아다놓은것 같이.>>

<<앉아있는 영웅보다 떠다니는 거지가 낫다는 말 못 들었어? 너는 인제 아주 우물안의 개구리야, 우물안의 개구리.>>

<<떠다니는 거지야 어서 앉아라. 장승처럼 버티구 섰지 말구.>>

<<너 앉은 자리를 비켜다우. 내가 앉을테니.>>

<<그 자식 광주 가서 괴상한 버릇을 배워왔군. 어서 그래라, 자.>>

좌정하자 윤창한이가 우선 호주머니에서 권연갑부터 꺼내여 내밀어주면서

<<한대 피워보겠니?>>

하고 웃어서 홍성걸이는

<<너 담배 피우니?>>

하고 눈이 좀 둥그래질라 하였다.

<<대객에 초인사란 말 너 아니? 이게 없으면 손님접대를 할수 없거든. 그래서 배웠다. 술두 배우구.>>

<<술까지! 다 키운 자식 하나 아주 버렸군.>>

<<난 처음에 견습생의 입문이 무언가 했더니... 제1과가 별게 아니구... 바루 술, 담배질을 익히는거더구나.>>

<<그래 인젠 견습생을 면했니?>>

<<아직두 멀었다! 그렇게 쉽게? 아마 한 이태 근사를 잘 모아야 할것 같다.>>

<<그 일두 쉽지 않구나.>>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하긴 그래.>>

<<대우는 적말없지만... 시간이 없어서 탈이다.>>

<<그렇게 바쁘냐?>>

<<글쎄 그동안 글 한줄 못 들여다봤다니까!>>

<<흥, 그렇구나.>>

윤창한이가 담배를 붙여물고

<<그래 넌 그동안 뭘 또 썼니?>>

하고 물어서 홍성걸이는 백운산의 지도밑에 천신만고하여 소설 한편을 발표하였다고 말하고 덧붙여서

<<그치들한테 끌려가 불고기집에서 턱을 내다가 5원 빚을 졌다니까.>>

하고 웃으니 윤창한이도

<<밑지는 장사 했구나. 망태기다!>>

하고 따라웃었다.

<<그래 광주에 가있으면서 녀자친구두 하나 못 사귀였니?>>

<<녀자친구가 다 뭐야!>>

<<왜?>>

<<아 우리 같은 견습생따위를 누가 거들떠보기나 한다던!>>

<<그렇게 눈들이 높으냐?>>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니까.>>

<<흠.>>

<<그 대신...>>

홍성걸이가 무슨 색다른 말이 나올것 같은 윤창한이의 입을 바라보았아.

<<우리 집에서 사진을 부쳐왔더라.>>

<<사진을? 무슨 사진을? ...>>

<<한번 보겠니? 내 색시감이란다.>>

<<어디 보자.>>

<<자, 이거다.>>

홍성걸이가 사진을 받아서 한눈 보자 대번에

<<이거 <올빼미>의 누이동생이 아니냐? 비단공장에 다니는...>>

하고 웨치듯이 말하니 윤창한이는

<<바루 봤다.>>

하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 다됐니?>>

<<웬걸. 이제 맞선을 한번 봐야지.>>

<<놓치지 말아, 색시감은 일등이다. 지금 침을 삼키는 놈이 한둘이 아니다.>>

<<나두 짐작하구있다.>>

<<그 자식, 인제 보니까 개천에 든 소루군.>>

<<아하하! ...>>

<<야 웃지 말아, 정 떨어진다.>>

<<아하하! ...>>

<<웃지 말란데두!>>

<<아하하! ...>>

한주일후에 윤창한이는 벼락같은 약혼식을 치르고 혼자 다시 광주로 떠났다.

홍성걸이는 다시 낮에는 쓰레기와 밤에는 원고지와 씨름하는것으로 그날그날을 보내게 되였다.


4

빠른것 같으면서도 더디고 또 더딘것 같으면서도 빠른 세월이 사정없이 흘러서 윤창한이의 첫아이-오누이쌍둥이의 첫돌이 되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아버지-윤창한이는 멀리 광주에 있었고 또 일이 바빠서 올수가 없었다. 그래 좀 싱겁기는 하였으나 결혼식때 둘러리를 섰던 관계로 홍성걸이가 그 돌잔치에 가 참석을 하였다. 석상에서 돌잡이들의 할머니인 윤창한이의 어머니가 홍성걸이를 보고

<<자네가 아마 우리 둘째하구 동갑이지?>>

하고 물어서 홍성걸이는

<<네 그렇습니다.>>

대답을 하는데 저도 모르게 얼굴이 좀 붉어졌다. 로총각들은 자격지심이 들어서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대개 이러하였다. 하지만 눈치가 좀 무딘편인 로파는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잼쳐 묻는것이였다.

<<생일이 어떻게 되던가 우리 둘째하구?>>

둘째란 윤창한이를 말하는것이다.

<<녜, 제가 한달 맏입니다.>>

홍성걸이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눈치 빠른 작은며느리-윤창한이의 안해가 시어머니에게 넌지시 눈짓을 하는데도 땅파기로 답답한 로파는 묻기만 위주하는것 같이 물어대였다.

<<그런데 어째 장가를 아니 가나?>>

<<녜, 차차 갑지요.>>

<<차차라니? 래년이면 서른살이 아닌가.>>

<<예, 그렇지만 지금은 다들...>>

홍성걸이가 쩔쩔매는것을 보다 못한 윤창한이의 안해가 얼른

<<어머니!>>

불러서 시어머니의 주의를

<<이것들 좀 보세요.>>

하고 두 돌쟁이에게 돌려놓아주었다.

진땀을 빼던 홍성걸이는 윤창한이의 젊은 안해에게 눈인사로 사의를 표하고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긴숨이 후유 나갔다.

(이놈의 로총각을 언제나 면한담!)

윤창한이가 결혼을 하고 첫아이-오누이쌍둥이를 보고 그리고 그 아이들의 첫돌이 돌아오는 동안 홍성걸이 신상에도 변화가 없지는 아니하였다. 첫째, 발표한 소설이 5편으로 늘어났고 둘째, 림시공이 고정공으로 승격을 하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부족한것이 있었다. 부족도 이만저만한것이 아니라 아주 크게 부족한것이였다. 이때까지 장가를 못 든것이다. 들어보려고 애는 무척 썼지만 들어지지를 않은것이다.

홍성걸이가 한동안 혼자 서서 이생각저생각하다가 나중에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에라 속상한데 백선생한테나 한번 가보자.>>

백운산은 홍성걸이가 원고를 또 하나 써가지고 보아줍시사고 온줄 알고

<<어디?>>

하고 손을 내밀었다.

<<아닙니다.>>

<<그럼?>>

<<그저 좀 뵈러 왔습니다.>>

<<아 그래요.>>

하고 백운산은 다시 쏘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홍성걸이가 말이 선뜻 나와주지 않아서

<<저...>>

하고 한동안 우물우물하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식스레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 좀 여쭈어볼 말씀이 있어서 그럽니다만...>>

<<무슨? ...>>

백운산이 쏘파에 묻었던 웃음을 바로하고 홍성걸이를 바라보며 상가럽게 물었다.

<<말씀드리기 좀 쑥스럽습니다만...>>

<<어서 말해보우. 우물쭈물하지 말구, 사내대장부답게.>>

백운산이 웃음의 소리로 격려를 해주는데 용기를 얻어서 홍성걸이는 자기의 불우하고 가련하고 억울한 련애사(恋爱史)를 다 토설하였다.

<<...색시감들이야 도 좋습지요. 그리구 물론 다들 제게다 호감두 가지구요. 보다 모르겠씁니까 자기를 좋아하는걸. 한데두 결국에 가서는 다 안된단 말읿니다! 신통할 정도지요. 제가 청결차의 거두매질을 한다는 말만 하면 다들 슬그머니 떨어져나간단 말입니다. 대번에 앵돌아져 뾰로통하는게 다 있지 뭡니까. 사람이 복통이 터질노릇입지요. 일을 잘한다구 전 벌써 상장을 네번이나 탔습니다. 그런데두 다 소용이 없으니... 이를 어쩝니까? 제가 보기엔 이 세상 녀자들이란 다 편견의 노예, 허영의 노예들이예요. 눈이 다들 이마밑에 붙어있잖구 관자노리밑에 붙어있단 말이예요. 안 그렇습니까 선생님?>>

홍성걸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차차 부풀어가는것을 보자 백운산이

<<다 그러건 아니지만두... 그런 편견이나 허영심이... 일반적으루 있는것만은 사실이지요.>>

동정하는투로 말하고 잇달아서

<<그렇다면 어째서 그걸 틀어잡구... 하나의 사회적문제루 틀어잡구... 써볼 생각을 안하시우? 우리 문학도의 사명이 바루 그건데!>>

하고 백운산은 로인답지 않은 격정적인 어조로 말하며 손바닥으로 가볍게 앞상을 탁 쳤다.

<<녜.>>

홍성걸이는 열리지 않아 애를 먹이던 창문이 갑자기 덜컥 열린것과도 같은 일종의 령감으로 머리를 꿰뚫리였다.

<<쓰겠습니다!>>

<<세상녀자들의 심금을 울린만한 감격적인것을 하나 써보시오.>>

<<예 쓰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목은 어떻게 다는것이 좋겠습니까?>>

<<문학도, 문학도.>>

<<녜, 문학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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