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15)

개미남 | 2019.05.30 22:36:12 댓글: 2 조회: 267 추천: 1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27978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1 - 15.

다이스케의 말을 듣고 고이치는 자신의 뺨이 빳빳하게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틀림없어? 틀림없이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어?" 동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다짐을 했다.
"틀림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지만 닮았어. 분명 그자라고 생각해."
"생각한다. 라는 정도로는 안 되지."
"아니, 그래도. 딱히 확인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꼭 닮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어."
다이스케는 침대에 앉아 두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눈에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는 열렬한 번뜩임이 서려 있었다.
고이치는 14년 전의 그때를 떠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해되고 그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렸던 다이스케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 목소리는 지금도 고이치의 귀에 남아 있었다.
"형. 나, 봤어. 아버지와 엄마를 죽인 놈. 봤어."
지금, 다이스케의 눈빛이 그때와 똑같았다. 그때의 억울함과 안타까움까지 선명하게 가슴속에 되살아난 게 틀림이 없었다.
고이치는 시즈나를 보았다. 그녀는 방바닥에 앉아 침대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맨 먼저 오늘 저녁의 작전 상황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보고를 들었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 전에 얼굴빛이 홱 변해버린 다이스케가 "그날 밤의 그자를 보았다"라는 말부터 꺼내놓았던 것이다.
고이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납장을 열었다. 그러고는 자그마한 종이박스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두툼한 파일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부모님이 살해된 사건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둔 파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신문기사였다. 어린아이가 수집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해봐야 기껏 그 정도였다.
고이치는 어느 신문기사 한 페이지를 펼쳐 시즈나 쪽으로 내밀었다.
"시즈나. 이 그림을 잘 봐. 도가미 마사유키라는 사람이 이런 얼굴이었어?"
그 기사에는 다이스케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낸 몽타주가 실려 있었다.
시즈나는 그림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닮았다고 하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꼭 닮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거 같아."
다이스케는 옆에서 그 몽타주를 쳐다보더니 김빠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고, 내가 한 이야기로 사람 얼굴을 그린다는 일은 처음 겪은 거라서 제대로 설명을 못했어. 사실은 그런 얼굴을 그려줬으면 했다고. 그 도가미 마사유키 같은 얼굴."
고이치는 파일을 덮고 다시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 상당한 세월이 흘렀어. 네 기억도 조금씩 변해버린 거 아닐까?"
"그렇지 않다니까. 제발 나를 좀 믿어. 내가 그때 정말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얼굴을 봤는데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그 얼굴만은 죽어도 잊지 못해. 잊으려고 해도 그건 안 되는 일이야. 그 얼굴을 생각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어. 꿈에까지 나타났었다니까? 그러니 내 기억이 변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 절대로 없어."
절절하게 호소하는 동생의 눈을 바라보는 사이에 고이치는 그 말을 의심한다는 것이 가엾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자의 얼굴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당시 아직 어린 다이스케에게 얼마나 마음의 부담이 되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왔다.
고이치는 팔짱을 꼈다.
"그렇다고 해도, 그저 닮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고. 음‥‥‥."
"하지만 단순한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우리 집도 양식당이었어. 도가미도 양식당을 경영하고 있고. 그런 쪽 일로 아버지와 뭔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잖아?"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스케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조사해볼까‥‥‥."
"어떻게 조사해?" 시즈나가 물어왔다.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야지. 아무튼 이 일은 나한테 맡겨줘. 뭔가 발견되면 너희에게도 알려줄 테니까."
고이치의 말에 시즈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이스케는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뭐야, 다이스케.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닌데‥‥‥."
"할 말이 있으면 해봐. 너답지 않다."
"아무래도 내 말을 안 믿는 것 같아서."
"왜?"
"정말 그 사건의 범인인지도 모른다고. 아버지와 엄마가 살해된 그 사건의 범인인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런데 형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지? 좀 더 깜짝 놀라고 흥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다이스케의 입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왔다.
고이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심정은 알아. 나 역시 놀라지 않은 게 아냐. 정말 도가미 마사유키가 네가 목격했던 그자라면,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아직 증거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어. 나는 그런 애매한 일에 일희일비하는 건 싫어. 크게 기대했다가 꽝으로 끝나버리고ㅡ. 우리가 지금까지 그 짓을 얼마나 되풀이했는데?"
"그래, 작은오빠." 시즈나도 말했다. "흥분하는 건 뭔가 증거가 잡힌 다음에 하자. 나 역시 이제 더 이상은 실망하고 싶지 않아. 특히 그 사건에 대해서는 더 그래."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부루퉁하던 다이스케의 표정이 조금씩 쓸쓸한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마침내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목격한 건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닮은 사람이라고 해봤자 그건 아무 증거도 안 되겠지."
"다이스케. 우울해할 거 없어. 내가 반드시 조사해볼 거야. 그보다 오늘 저녁에는 어땠지? 계획대로 잘됐어?" 고이치는 다이스케와 시즈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큰오빠의 어드바이스. 제대로 먹혔어." 시즈나가 대답했다. "그 사람. 단골손님에 대한 의견이 꽤 마음에 들었나 봐. 조명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더니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던데?"
"사전 준비를 한 보람이 있군. 그래서, 다음 약속은?"
"당연히 잡았지. 하야시라이스 시식회에 오라고 했어."
"하야시라이스? 그런 시식회가 있어?"
"꼭 먹으러 와달래. 그 사람, 여자를 대하는 건 영 서툰 것 같으니까 다음에는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가보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시즈나에게 고이치는 미더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지만 한쪽에서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다이스케도 마음에 새겨두었다.
이틀 뒤, 고이치는 요코하마에 와 있었다. 사쿠라기초 역을 나와 음식점이 늘어선 거리를 남쪽으로 걸어갔다. 오오카가와강에 걸린 교각의 앞쪽에 <우마노키>라는 커피숍이 있었다. 로그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실외장식이고 가게 안에도 자연목을 넉넉히 사용하고 있었다.
고이치는 세로로 자른 통나무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손님은 그 외에는 없었다. 머리가 벗어진 대신 흰 수염을 듬뿍 길러놓은 마스터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려주였다.
"이쪽에 가게 내신 지 몇 년쯤 되셨어요?" 커피를 블랙으로 마시며 고이치는 물었다.
"25년이야." 마스터는 왠지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전부 다 오래 됐지? 여기저기 삐거덕거려서 수리해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데. 이거, 돈이 영."
"꽤 오래 하셨네요. 이 근처도 많이 바뀌었지요?"
"글쎄. 이제는 별로 바뀔 것도 없는 단계인 거 같아. 널찍한 땅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마스터는 그릇을 닦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렸을 때 이 근처에 온 적이 있어요. 양식당에 갔던 기억이 있는데, 아세요?"
고이치가 묻자 마스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도가미 정>이겠지. 저기 대각선으로 맞은편에 있었어. 지금은 중고 CD라든가 DVD를 파는 가게가 되어버렸지만."
"아, 그 가게가‥‥‥. 그랬군요."
"지금은 간나이 쪽으로 옮겼어. <도가미 정>이라고 들어본 적 없어? 요즘에는 여기저기 체인점이 많이 생긴 모양이던데."
"긴자에서 본 것 같아요."
"그 원조가 바로 요 앞에 있었다니까. 자그마한 식당이었지만 당시부터 인기가 있었지.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거든. 거기에 줄 서기 싫은 손님들이 우리 가게로 들어오고 그랬어." 마스터는 높직한 소리로 말했다. 나쁜 추억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인기 있는 식당이었어요?"
"하야시라이스를 아주 잘한다고들 했지. 텔레비전이나 잡지에도 소개되고 그랬을걸? 나도 몇 번 먹으러 갔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맛있었어."
시즈나가 하야시라이스 시식회에 간다고 했던 것을 고이치는 머릿속에 떠올렸다. 도가미 유키나리는 새롭게 오픈하는 체인점의 대표 메뉴로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 식당을 경영하던 분은 어떤 사람이었지요?"
"도가미 씨라는 사람이야. 그래서 가게 이름도 <도가미 정>이지. 장사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었어. 처음에 식당 개업했을 때, 나한테도 인사하러 왔었는데‥‥‥, 다른 데서 요리사 수업을 쌓다가 겨우겨우 독립의 꿈을 이루었다던가. 그런 얘기를 했었네. 처음에는 손님이 없어서 꽤 고생하는 기색이더니 3년쯤 지나서부터였던가, 갑자기 와 몰려들더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다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그걸 먹겠다고 몰려오는 거야. 거참, 굉장하구나 했더니만, 얼마 뒤에 가게를 간나이 쪽으로 옮겨가더라고. 너무 비좁아서 안 되겠다면서. 틀림없이 돈도 참 많이 벌었을 거야. 아, 그렇지. 간나이 쪽 가게. 어디인지 알려줄까?"
"아뇨, 괜찮아요. 제가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간나이로 옮긴 게 10년 전이었나? 그 뒤로는 뭐, 팡팡 터지다시피 해서 이제는 여기저기 체인점까지 내고. 정말 앞서 가도 한참을 앞서 가버렸네."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은 커피를 마셨다. 그가 한 조사에 의하면 <도가미 정>의 본점이 간나이로 옮겨간 것은 정확하게 12년 전이었다. 그 2년 뒤에 도가미 마사유키는 새로 집을 장만하기도 했다. 역시 상당히 씀씀이가 커졌다는 얘기인 것이다.
고이치 형제의 부모가 살해된 것은 14년 전이었다. 마스터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도가미 정>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런 때에 점주가 요코스카에 가서 강도 살인사건을 저지르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커피 값을 치르고 고이치는 커피숍을 나섰다. 대각선으로 맞은편에 있는 중고 소프트 점을 바라보았다. 가게 앞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고 거기에 영화 포스터며 인기 탤런트의 그라비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직접 안에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모르겠지만, <아리아케>보다 약간 넓은 정도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설 만큼 인기 있는 식당이었다면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쿠라기초 역으로 나가려다 중간에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히노데마치 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느 번호에 걸었다. 이 인물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건 다이스케와 시즈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상대 인물이 전화를 받았다. 히노데마치에 와 있으니 지금 잠깐 만날 수 있겠느냐고 말해보았다. 상대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요코스카 쥬오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고이치가 게이힌 급행을 타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문 바로 옆에 서서 바깥에 흘러가는 경치를 바라보며 먼 옛날 일을 떠올렸다. 산도 가깝고 바다도 가까운 이 고장이 고이치는 좋았다. 별을 보기가 힘들었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고이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쪽 세계로 돌아오는 건 진즉에 포기했잖아. 하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요코스카 쥬오 역에 도착하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가까운 커피숍에 있다고 했다. 셀프 서비스점이었다.
그 커피숍은 금세 눈에 띄었다. 고이치는 적잖이 긴장되는 마음으로 커피숍에 들어갔다. 연락은 몇 차례 주고받았지만 직접 만나는 건 몇 년 만이었다.
상대는 길거리를 마주한 카운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비스듬히 뒤쪽에서 보이는 옆얼굴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단지 머리에 그새 새치가 섞여 있었다. 회색 양복에 감싸인 등판도 다소 여윈 듯했다.
고이치는 커피를 사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곧바로 상대도 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잠시 틈을 둔 뒤에, 눈을 큼직하게 떴다.
"고이치 군? 아아, 많이 컸네."
고이치는 그 옆에 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번에도 똑같은 소리를 하시더니, 제 키는 그때하고 똑같아요."
"그래?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상대는 웃었다. 입가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건 14년 전의 그때와 똑같았다.
요코스카 경찰서의 가시와바라 씨였다. 지금도 같은 부서에서 형사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연락을 해온 건 고이치가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동시설 쪽에서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그 뒤로 일 년에 한두 번, 문득 생각난 것처럼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대부분 그리 큰 용건은 없었다. 단순히 어떻게 지내느냐고 근황을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고이치는 가시와바라에게는 내내 거짓말을 해왔다. 다이스케와 시즈나는 만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현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을 생각하면 현직 형사와 접촉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위험하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만난 게 4년 전이었나?" 가시와바라가 말했다.
"네, 사설 도박장 건으로‥‥‥."
"음, 그랬지."
4년 전, 가시와바라는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고이치를 불러냈다. 그 얼마 전에 요코하마에서 사설 도박장을 개설하여 불법 도박을 하던 조직이 적발되었다. 거기에서 입수된 조직의 고객 리스트에 아리아케 유키히로라는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고이치 형제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유키히로에게는 3백만 엔 정도의 빚이 있엇다. 살해되기 직전에 이 부부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러 돌아다닌 이유가 아무래도 그 도박 빚을 갚을 목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졌다.
요코스카 경찰서에서는 그 도박 조직이 양식당 부부 살해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재개하였다. 가시와바라가 고이치를 불러낸 것도 그런 재수사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수사에서도 경찰은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도박 조직이 사건에 직접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했던 것이다.

추천 (1) 비추 (0) 선물 (0명)
IP: ♡.136.♡.64
마지막이야 (♡.104.♡.209) - 2019/06/01 22:19:58

한숨에 다 읽엇네요...
올리느라 수고많으셨어요...
다음집도 기대할게요~~^^

연가99 (♡.234.♡.219) - 2019/06/10 13:32:38

저도 한숨에 다 읽었네요.
너무 재밌게......
다음집도 한꺼번에 많이 올려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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