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8)

개미남 | 2019.06.21 14:54:45 댓글: 1 조회: 288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41362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해결 -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

지금부터 쓰는 글은 가가 형사의 허락을 얻어서 쓰는 것이다. 이 집을 떠나기 전에 꼭 이 수기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특별히 허락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무엇을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인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리라. 가령 가짜 수기라고 해도 쓰기 시작한 이상 마지막까지 끝을 맺고 싶은 것이 작가의 본능이라고 말해주어도 아마 그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조금 전 한 시간쯤의 경험을 글로 써서 남겨두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인상 깊은 경험을 기록해두려고 하는 것도 작가의 본능이리라. 가령 그것이 스스로의 파멸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가가 형사가 찾아온 것은 오늘, 즉 4월 21일 오전 10시 정각이었다. 나는 차임벨이 울린 순간부터 모종의 예감을 품기 시작했고, 찾아온 사람이 그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도 나는 동요하는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하며 그를 맞아들였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잠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이지? 아, 아무튼 안으로 들어오는 게 어때?"
"예. 실례하겠습니다."
그를 소파로 안내하고 나는 차를 준비했다.
"아, 괜찮은데요." 가가 형사의 말이었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건?" 찻잔을 그 앞에 내려놓으며 물어보았다. 그때 내 손이 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자 가가 형사도 내 손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찻잔에는 손을 대지 않고 똑바로 내 얼굴을 보았다.
"실은 대단히 괴로운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나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다. 실제로는 당장이라도 현기증이 일어날 것처럼 심장의 고동이 빨라져 있었다.
"선생님 댁을……, 이 집을 수색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가가 형사는 괴로운 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우선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 다음에는 웃음을 띠었다. 물론 그것이 제대로 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가 형사에게는 그저 내가 얼굴을 찡그린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 방을 뒤져봤자 아무것도 안 나와."
"그렇다면 좋겠습니다만……, 아마 뭔가 나올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잠깐. 그건 혹시 이런 얘기인가? 자네는 히다카를 살해한 범인이 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증거가 이 방에 있다는……?"
가가 형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허. 이거 깜짝 놀랄 소리네." 나는 말했다. 고개를 젓고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내 힘껏 해본 연극이었다. "너무 뜻밖의 이야기라서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군. 자네가 지금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아, 하지만 아무래도 농담은 아닌 것 같군."
"예. 선생님. 유감스럽지만 저는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신세를 진 선생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진실을 밝히는 게 우리 경찰이 할 일이라서요."
"물론 자네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지. 자네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면 가령 친한 친구든 가족이든 의심하는 게 의무일 거야. 하지만 솔직히 이건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군. 아무튼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서 말이야."
"영장은 가져왔습니다."
"수색영장이라는 건가?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기 전에 이유를 말해줄 수 없을까? 그러니까 그……."
"왜 선생님을 의심하는가. 라는 거요?"
"음. 그렇지. 아니면 아무 설명도 없이 온 집 안을 휘젓는 것이 자네들의 방식인가?"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가 형사는 눈을 떨구었다. 그리고 아까는 손을 대지 않았던 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내 쪽을 보았다. "선생님께는 말씀을 드릴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겠어. 자네 이야기를 들었다고 내가 그걸 꼭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 말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 없이 가가 형사는 상의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가장 중요한 점은요." 그는 말했다. "히다카 씨의 사망 추정시각입니다. 일단 5시부터 7시 사이라고 판정이 나왔지만 부검을 실시했던 의사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생각해도 6시 이후일 가능성은 낮다고 했어요. 위 속의 내용물 소화상태로 사망시각을 산출해내는 방법은 지극히 신빙성이 높아서 이번 같은 경우에는 두 시간씩이나 그 폭을 넓게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히다카 씨가 6시 이후에도 살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게 바로 나라는 얘기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실이니 어쩔 수가 없어. 가능성은 낮을지도 모르지만 자연현상이니까 20분에서 30분쯤의 오류가 나는 일도 있는 거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우리로서는 선생님의 그런 증언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전화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겁니다. 전화라고 하면 정말로 본인이 걸어왔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아니, 그 목소리는 히다카였어. 틀림없어."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죠. 선생님 이외의 어느 누구도 그 전화를 받은 건 아니거든요."
"전화라는 건 원래 그런 거잖아? 허 참. 이건 뭐, 믿어달라는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군."
"저도 믿고 싶지만, 그래서는 판사 쪽에서 받아주지 않겠지요."
"분명 전화를 받은 건 나 혼자였지만 곁에 또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지. 도지 출판사의 오시마 군에게 그 이야기는 듣지 못했나?"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각에 전화가 왔었다고 오시마 씨는 증언해주셨어요."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를 오시마 군이 듣지 못했대?"
"아뇨. 듣고 있었어요. 노노구치 선생이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하시는 것 같았다고 했으니까요. 그랬다가 나중에야 그 상대가 히다카 씨라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렇지. 하지만 그걸로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로군.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마치 히다카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것처럼 내가 연극을 했다. 자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러자 가가 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고 나서 말했다.
"그럴 가능성을 부정할 만한 이유가 없었어요."
"부디 부정해주었으면 싶은데. 아무래도 그럴 수가 없는 모양이군." 나는 약간 짓궂은 소리를 하는 척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안 돼. 부검을 통해 산출해낸 사망 추정시각과 약간의 차이가 나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도 처음부터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고 시작한 것처럼 들리는군.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가가 형사는 내 눈을 지그시 보고 나서 말했다.
"예.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꼭 듣고 싶군."
"담배예요." 가가 형사는 말했다.
"담배?"
"선생님도 말씀하셨지요? 히다카 씨는 헤비 스모커였다. 글 쓰는 작업 중에는 무슨 벌레 잡는 연막이라도 피워놓은 것 같았다고요."
"응.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그게 뭐가 문제가 되지?" 말을 하면서 나는 불길한 예감이 검은 연기처럼 가슴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가가 형사는 말했다. "그런데 재떨이에는 꽁초가 한 개뿐이었어요."
"응?"
"단 한 개뿐이었습니다. 히다카 씨의 작업실 재떨이에는 꾹꾹 눌러 끈 담배꽁초 하나가 들어 있을 뿐이었어요. 후지오 미야코 씨가 돌아간 게 5시 넘어서였고, 그 뒤에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면 당연히 담배꽁초가 더 많았어야 옳았겠지요. 게다가 그 단 한 개의 담배꽁초는 집필을 하면서가 아니라 노노구치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피웠던 것이죠. 그것을 선생님의 수기를 통해 알아냈습니다."
나는 거기에 얼른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가가 형사가 히다카가 피우는 담배 개수에 대해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면 그때부터 이미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는 것인가.
"그러니까요." 그는 말을 이었다. "히다카 씨는 혼자 남은 뒤부터 살해될 때까지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죠. 이 점에 대해 리에 부인에게 물어봤더니, 가령 30분이라도 집필 작업을 했다면 최소한 두세 대는 피웠을 거라는 대답이었어요. 게다가 일을 시작할 때는 특히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어요. 자,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요?"
나는 마음속에서 나 자신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았지만, 금세 알아차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 담배가 떨어졌던 거 아닐까?" 우선 나는 그렇게 말해보았다. "아니면 사다놓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최대한 아껴 피웠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가 형사가 그런 것을 놓쳤을 리 없다.
"히다카 씨는 낮에 쇼핑을 갔던 길에 네 갑을 사왔습니다. 책상 위에는 열네 개비가 남은 담뱃갑 하나, 그리고 서랍에는 새 담배 세 갑이 들어 있었어요."
말투는 조용했지만 그가 내뱉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나를 쓰윽쓰윽 몰아세우는 박력이 있었다. 그가 검도의 달인이었다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그 순간 등으로 한기가 내달렸다.
"흠, 그랬군. 그렇다면 분명 담배꽁초가 하나뿐이라는 건 부자연스럽겠어. 그 이유에 대해서는 히다카 본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지. 어쩌면 그런 거 말고, 혹시 목이 좀 아팠다든가 그런 이유인지도 몰라." 나는 필사적인 방어를 시도해보았다.
"만일 그랬다면 선생님 앞에서도 피우지 않았겠지요. 역시 우리로서는 가장 타당한 추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좀 더 빠른 시각에 살해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로군."
"네. 상당히 빠른 시각이지요. 아마 리에 부인이 집을 나온 직후쯤이었을 겁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군."
"다시 담배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히다카 씨는 후지오 미야코와 함께 있을 때는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리에 부인에 의하면, 이전에 후지오 미야코가 담배연기에 불쾌한 얼굴을 했던 적이 있어서 되도록 이야기를 좋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도 앞으로 후지오 미야코 앞에서는 담배를 삼가는 게 좋겠다고 히다카 씨 본인이 말했다더군요."
"흐음……." 그야말로 책사策士 히다카다운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후지오 미야코와의 대화가 상당히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었다는 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히다카 씨로서는 그녀가 돌아간 순간, 기아에서 해방된 것처럼 담배에 손을 내밀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꽁초가 없어요. 피우지 않았거나 아니면 피우지 못했겠지요. 나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끄덕 턱을 당겼다.
"하지만 나는 그 한참 전에 히다카의 집을 나왔어."
"예. 알고 있습니다. 일단 현관문을 나가셨죠. 하지만 그 다음에 정원 쪽으로 빙 돌아 히다카 씨의 작업실 쪽으로 가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이것과 똑같은 추리를 선생님 스스로도 말씀하셨지요? 후지오 미야코를 범인으로 가정했을 때였어요. 그녀가 히다카 씨의 집에서 나가는 척하면서 작업실 쪽으로 돌아갔던 게 아닌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건 선생님 자신의 행동을 말씀하셨던 것 아닌가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허, 이것 참. 그 말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 나로서는 자네에게 협력한다는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던 건데."
그러자 가가 형사는 수첩에 눈을 떨구고 다시 말했다.
"선생님이 히다카 씨 집을 나오시던 때의 일을 선생님 스스로는 지난번 수기에 다음과 같이 쓰셨어요. '안녕히 가세요. 라고 그녀는 말하고 내가 다음 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여기서 '그녀'라는 건 리에 부인입니다."
"그게 어떻다는 건가?"
"이 문장으로 보자면 리에 부인은 대문 밖까지 선생님을 지켜보고 계셨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 점에 대해 부인에게 확인해봤습니다. 리에 부인의 대답은 선생을 배웅한 건 현관문까지라고 했어요. 이 모순은 어째서 생긴 것일까요."
"딱히 모순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건 없잖아? 둘 중 누군가의 기억이 잘못된 거겠지."
"그럴까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일부러 선생님이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쓰신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즉 그런 식으로 수기를 써서 사실은 히다카 씨 집의 대문을 나서지 않고 정원 쪽으로 돌아 들어갔다는 것을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고요."
나는 푸웃 실소를 터뜨리는 척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자네가 생각이 지나쳐서 억지로 갖다 붙이는군. 내가 범인이라고 미리 결론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자꾸 나쁜 쪽으로 보는 거야."
"아뇨, 나는." 가가 형사는 말했다. "애써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한 겁니다."
그의 눈빛에 한순간 나는 압도되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 사람이 평소에도 자신을 '나'라고 말했던가. 라는 별 관계없는 생각을 더듬고 있었다.
"좋아, 알겠어. 뭐, 그것도 괜찮겠지. 어떻게든 추리를 해보는 건 자네 마음이야. 하지만 자네 마음대로 하는 김에 그 뒤의 시나리오도 좀 듣고 싶군. 정원 창문 밑으로 숨어든 나는 그 뒤에 어떻게 한 거지? 창문으로 넘어가서 느닷없이 히다카를 내리쳤나?"
"그랬습니까?" 가가 형사는 내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묻고 있는 건 내 쪽이야."
그는 한 차례 한숨을 내쉬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상세한 범행에 대해서는 본인의 입을 통해 듣지 않고서는 뭐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한테 실토를 하라는 말인가? 그야 내가 범인이라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고백하고말고. 하지만 나는 범인이 아니야. 자네는 유감스러울지도 모르겠네만, 그보다 전화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나한테 걸려온 히다카의 전화. 그게 만일 히다카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아니라면, 그럼 누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지? 내 증언에 대해서는 매스컴에서도 상당히 보도가 되었으니까 만일 그날 그 시각에 나에게 전화를 했던 사람이 따로 있다면 지금쯤 그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겠어?" 그러고 나서 나는 바로 지금 생각난 일이라는 듯 둘째손가락을 세웠다. "아, 그렇군. 자네, 나한테 공범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자가 전화를 해온 거라고?"
하지만 가가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거실 테이블 위의 무선 전화기를 쳐다보더니 그것을 집어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공범 같은 건 필요 없었겠죠. 요컨대 이 전화기가 울리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야 그렇지만 전화를 걸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고 나는 손뼉을 쳤다. "아, 역시나. 알았어. 자네는 이렇게 말하려는 거군. 그때 나는 휴대전화를 몰래 숨겨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시마 군의 눈을 피해 이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그런 방법으로도 이 전화기를 울리는 건 가능하겠군요." 가가 형사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무리야. 나는 휴대전화 같은 건 있지도 않고 어디서 빌릴 데도 없어. 게다가……. 아, 그래. 만일 그런 트릭을 썼다면 간단히 조사해볼 수 있잖아? 전화국에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까."
"어디서 전화가 걸려왔는지 조사하는 건 대단히 어려워요."
"아, 그런가? 그게 역탐지라는 거지?"
"단지 말이죠." 가가 형사는 말했다. "어디에 걸었는지는 간단히 조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히다카 씨가 그날 어디에 전화를 걸었는지 조사해보면 간단하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조사했어?"
"네. 조사했습니다." 가가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서 결과는?"
"6시 13분에 여기 선생님 댁으로 발신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음, 그렇겠지. 실제로 전화가 왔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나는 두려움이 한층 더 커져가고 있었다. 발신기록을 확인하고서도 가가 형사가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건 거기에 걸린 트릭을 알아차렸음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가가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선 전화기를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 소파에 앉지 않았다.
"히다카 씨는 그날 원고가 완성되는 대로 팩스로 보낼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그 작업실에는 팩시밀리 기계는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물론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나는 모른다고 대답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침묵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가가 형사가 말했다. "컴퓨터에서 직접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알고 계셨지요?"
"들은 적은 있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지요? 일절 종이문서를 남겨둘 필요가 없는 거예요. 하긴 히다카 씨는 캐나다에 가면 전자메일을 쓸 생각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 준비를 해두라고 편집부에 말했다는군요. 그렇게 되면 전화요금도 절약된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어려운 기계 얘기는 잘 몰라. 나는 컴퓨터와는 영 거리가 멀어서 말이지. 프린트를 하지 않고 직접 팩스처럼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히다카에게서 그저 듣기만 했어."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요. 누구라도 할 수 있죠. 게다가 여러 가지 편리한 기능이 딸려 있습니다. 여러 명에게 보내는 것도 전혀 번거롭지 않고. 보내는 곳을 동록해둘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가 형사는 잠시 입을 다문 채 나를 내려다보더니 뒷말을 이었다. "시각을 미리 설정해두면 그 시간에 자동적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외면하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내가 그 기능을 사용했다는 건가?"
이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예의 전깃불에 대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있었거든요." 가가 형사는 말했다. "선생님이 히다카 씨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이 깜깜했었다고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집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겠지만, 컴퓨터만은 켜진 그대로였던 게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전에도 말씀드렸지요? 그 답이 드디어 나왔어요. 컴퓨터는 트릭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도구였기 때문에 계속 작동시켜둘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선생님은 히다카 씨를 살해한 뒤에 급하게 알리바이 조작에 들어갔어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컴퓨터를 켜서 적당한 문서를 불러내고, 그 문서가 오후 6시 13분에 팩스로 이 집에 보내지도록 세트해두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집 안의 전깃불을 모조리 껐어요. 그건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감안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겠지요. 오후 8시에 다시 하다카 씨의 집을 찾아왔을 때, 집 안의 전깃불이 꺼져 있어서 그가 집에 없다고 생각하여 부인이 있는 호텔에 전화했다. 그런 스토리로 만들어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방에 불이 켜져 있다면 호텔에 전화하기 전에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는 게 통상적인 거 아닌가 하고 의심을 받을 우려가 있어요.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사체의 발견은 리에 부인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단숨에 거기까지 말한 뒤에 가가 형사는 잠시 틈을 두었다. 내가 뭔가 반론이든 변명이든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컴퓨터 CRT 화면에 대해서도 꽤 고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해설이 다시 시작되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모니터라는 게 꽤 환하게 비치니까요. 하지만 어떻든 컴퓨터 본체는 켜두어야 했겠지요. 그렇게 되면 모니터만 끄고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실은 그게 도리어 더 위험했습니다. 사체를 발견하는 자리에는 리에 부인도 함께 있게 되는데 만일 리에 부인이 컴퓨터는 켜져 있는데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챈다면 자칫 경찰 쪽에 트릭을 들켜버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침을 삼키려고 했지만 입 안이 이미 바싹 말라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가가 형사의 혜안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때의 내 마음속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완벽했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선생은 아마 오후 5시 반쯤에 히다카 씨의 집을 나왔을 거예요. 그리고 서둘러 자택에 돌아오는 도중에 도지 출판사의 오시마 씨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바로 원고를 받으러 올 수 있겠느냐고 말하셨지요. 오시마 씨는 그날, 당연히 팩스로 원고를 받을 줄 알고 있었던 터라 급하게 와달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다행이 도지 풀판사에서 전차로 한 정거장 거리라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가 형사는 덧붙여 말했다. "이런 일은 선생님의 수기에는 적혀 있지 않았어요. 마치 오시마 씨가 집에 찾아오는 건 오래전부터 약속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죠."
물론 일부러 그 얘기는 빼고 썼지.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에 나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왜 오시마 씨를 집으로 불렀는가, 그건 굳이 말씀드릴 것도 없겠지요? 알리바이의 증인으로 내세우기 위해서였어요. 6시 13분. 히다카 씨의 컴퓨터는 당신이 세트해둔 대로 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때 이쪽에 있는 팩시밀리는 스위치가 켜져 있지 않았어요. 당신은 태연히 무선 전화기를 집어들어 전화를 받았죠. 그때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건 팩스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음뿐이었을 겁니다. 거기에서 당신은 최고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무기질의 신호음을 들으며 마치 상대가 사람인 것처럼 대화를 했던 것이죠. 오시마 씨가 깜빡 속아넘어간 것을 봐도 그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무사히 일인극을 마친 당신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히다카 씨의 컴퓨터는 통신 에러라는 것으로 그 임무를 마쳤습니다. 거기까지 잘 풀리고 나자 그 다음 일은 당신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겠지요. 계획했던 대로 리에 부인과 함께 히다카 씨의 사체를 발견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부인의 눈을 피해 컴퓨터 통신기록을 삭제해두었겠지요."
가가 형사는 어느새 나를 '선생님'이 아니라 '당신'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그런 것이 마음에 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러는 게 이 자리에는 더 어울렸다.
"대단한 트릭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짧은 기간에 생각해 내신 것이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단 한 가지 실수가 있었더군요."
실수라고? 그게 무엇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말했다. "그건 히다카 씨의 집에 있는 본래의 전화 쪽이에요. 만일 히다카 씨가 정말 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면 재발신 버튼을 눌렀을 때 당연히 이곳으로 연결이 됐겠지요?"
아차! 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 집으로 연결되지 않았어요. 연결된 곳은 캐나다 밴쿠버였습니다. 리에 부인에 의하면 사건 당일 새벽 6시에 히다카 씨 본인이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재발신된 번호는 그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물론 이건 반론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히다카 씨가 이곳에 전화한 뒤에 캐나다에 전화를 하려고 버튼을 눌렀다가 연결이 되기 전에 끊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차를 생각해서 일부러 새벽에 일어나 전화를 했던 히다카 씨가 상대방 쪽은 한밤중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고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게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가 형사는 "이상입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가가 형사는 어쩌면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할 말이 하나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반론은 안 하십니까?" 의외라는 듯이 그는 물어왔다.
여기서 나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가가 형사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날카롭지만 음험함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용의자를 대하는 형사의 시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원고에 대한 이야기가 없군." 나는 말했다. "히다카의 컴퓨터에 들어 있던 <얼음의 문> 연재물 말이야. 지금 자네의 추리가 옳다고 한다면 그는 언제 그 원고를 썼지?"
그러자 가가 형사는 입을 꾹 다문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대답이 궁한 것이 아니라 대답할 방법을 숙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히다카 씨는 이미 다음 연재분을 써두었고 그것을 알아낸 당신이 알리바이 조작에 그것을 이용했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또 하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는 내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 원고는 당신이 쓴 것이라는 겁니다. 그날 당신은 원고가 들어 있는 플로피디스크를 히다카 씨의 집에 가져갔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급하게 히다카 씨의 컴퓨터에 입력했던 거지요."
"흥. 대담한 추리로군."
나는 웃음을 지으려고 했지만 이미 뺨이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원고를 소메이 출판사 야마베 씨라는 분에게 봐달라고 했어요. 야마베 씨의 의견은 이건 명백히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다카 씨의 글과는 문체가 미묘하게 다르고 행을 바꾸는 방식 같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다른 점이 많이 눈에 띈다고 했어요."
"그럼 자네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내가 처음부터 그를 죽일 목적으로 그런 원고를 준비했다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획적인 것이라면 좀 더 문체나 형식을 비슷하게 맞췄겠지요.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닌 모양이니까요. 게다가 흉기로 문진을 사용한 점이나 알리바이의 증인으로 급하게 오시마 씨를 불러들인 점 등을 감안하면 역시 돌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내가 그런 원고를 준비했다는 건가?"
"문제는 바로 그 점이에요. 왜 당신이 <얼음의 문>의 원고를 가져갔는가. 아니, 그 이전에 왜 당신이 그 원고를 직접 썼는가. 나는 그 점에 크게 관심이 있어요. 그리고 바로 거기에 당신이 히다카 씨를 살해한 동기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가 패닉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자네 이야기는 전부 상상이지? 증거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택수색을 하려는 것이죠.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우리가 무엇을 찾아내려고 하는지 아시겠지요?"
내가 침묵하고 있자 그는 말했다.
"플로피디스크예요. 그 원고가 들어 있는 플로피디스크. 어쩌면 그 원고가 여기 워드프로세서 본체의 하드디스크에도 남아 있을지 모르죠. 아니, 아마 남아 있을 겁니다. 계획적인 범죄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면 즉석에서 없애버렸겠지만, 나는 그런게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원고를 틀림없이 어딘가에 남겨뒀을 거예요."
나는 눈을 떴다. 가가 형사의 맑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 시선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주 한순간의 묵상이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자네가 찾는 것이 발견된다면 나를 체포하겠군?"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습니다만."
"그 전에……." 나는 물었다. "자수하는 것도 가능할까?"
가가 형사의 눈이 커졌다. 그 뒤에 그는 한 차례만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이 단계에서는 자수라고 인정받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공연한 저항을 하신다면 별로 득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어깨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절망하면서도 반면 내가 안도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이것으로 이제 더이상 연극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나를 의심했지?" 나는 가가 형사에게 물었다.
"첫날밤부터." 그는 대답했다.
"첫날밤부터? 내가 뭔가 또 다른 실수를 했나?"
"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 추정시각을 물으셨어요."
"그게 뭐가 이상한데?"
"이상하죠. 선생은 6시가 넘은 시간에 히다카 씨와 이야기를 했었고 8시에는 이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니 당연히 사망 추정시각은 그 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도 왜 형사에게 일부러 그런 질문을 하셨는가……."
"아!"
"게다가 선생은 다음 날 다시 한 번 똑같은 질문을 하셨어요. 이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을 때죠. 그때 확신을 가졌습니다. 선생은 사건이 일어난 시각을 알고 싶은 게 아니다. 경찰이 사망 추정시각을 몇 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겁니다."
"그랬군."
그가 말하는 대로였다. 나는 내 알리바이 조작이 제대로 먹혀 들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단하네." 나는 가가 형사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자네는 분명 훌륭한 형사일 거라고 생각해."
"고맙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럼 외출 준비를 해주시겠습니까? 단지, 죄송하지만 저는 여기서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용의자를 깜빡 혼자 두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일어났던 예가 적지 않거든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나는 자살 같은 건 안 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게도 극히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예. 그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가가 형사 역시 자연스러운 웃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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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그리움 (♡.133.♡.253) - 2019/07/19 17:19:05

이게 마지막회입니까? 재밋는거 마지막회까지 올려주심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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