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4)

개미남 | 2019.06.20 11:27:31 댓글: 0 조회: 139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40352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2.
헤이스케는 펄쩍 뛰어오를 것처럼 깜짝 놀랐다. 그를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모나미였던 것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 인형처럼 잠들어 있던 딸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어제 보았던,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이 아니라 검은 눈동자에는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호소하는 빛이 깃들어 있었다.
"모나미‥‥‥ 아, 모나미. 정신이 돌아왔구나! 아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한시라도 빨리 의사를 불러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황급히 문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였다. 모나미의 연약한 목소리가 귓가에 와닿았다.
"잠깐만요‥‥‥."
그는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니? 어디 아프니?"
모나미는 애절한 눈빛으로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온몸의 힘을 짜내어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물론 듣고말고. 하지만 그 전에 의사 선생님을 불러와야지."
그러자 모나미는 힘을 주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을 부르면 안 돼요. 어쨌든, 이쪽으로 와줘요‥‥‥. 부탁해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딸아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오랜만에 깨어나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것이리라.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여기 있어. 왜 그러니? 뭐든지 말해보렴."
모나미는 곧장 입술을 열지 않고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과 마주친 순간, 헤이스케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참으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눈길이었다. 모나미답지 않은, 아니 어린애답지 않은 시선이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잠들어 있던 아련한 추억을 깨어나게 했다. 누군가가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여보‥‥‥. 내가 하는 말을 믿어줄래요?"
"아아, 믿고말고. 네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지 믿어줄게."
그는 딸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직후, 온몸에 싸늘한 소름이 휘감고 지나갔다. 지금 여보라고 했나? 모나미는 그의 얼굴에 시선을 똑바로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나는, 모나미가 아니에요."
"뭐라고?"
그의 얼굴은 어정쩡한 미소를 띤 상태로 차갑게 굳어졌다.
"모나미가 아니라고요. 모르겠어요?"
헤이스케의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래도 어떻게든 미소를 유지하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하하하. 깨어나자마자 이 아빠를 놀리는 거냐? 하하하. 하하하."
허공을 가르는 공허한 웃음이 병실 안을 가득 메웠다.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 나는 모나미가 아니라고요. 당신도 모르겠어요? 나예요. 당신의 아내. 나오코라고요."
"나오코?"
"그래요. 나오코예요."
모나미의 얼굴은 가까스로 울음을 참고 있는 듯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그는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지금 한 말을 반추해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았지만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고 하자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었다. 거부감이 일었던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결국 어색한 웃음을 짓는 일밖에 없었다.
"이런 때에 장난을 하다니. 그런 장난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후, 웃음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모나미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여 가슴을 쥐어뜯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엉거주춤 문으로 향했다. 의사를 부르려는 것이었다. 딸의 머리가 이상해졌다. 만약에 딸의 머리가 이상해지지 않았다면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리라.
"가지 말아요. 사람을 부르지 말고 내 얘기를 들어줘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헤이스케를 향해 그녀는 애원하듯이 호소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려고 하는지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나는 정말 나오코예요.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해요.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모나미는 마침내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흐느껴 울었다. 아니, 모나미의 모습을 한 소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그의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방향을 잃어버렸다.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의 말투와 완벽하게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살펴보자 모나미 주위를 감돌고 있는 것은 초등학생의 분위기가 아니라 차분한 여인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오랫동안 헤이스케를 사랑에 들뜨게 했던 바로 그 분위기였다.
"하지만‥‥‥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모나미의 모습을 보기조차 두려워진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계속 흐느껴 울기만 했다. 서러울 정도로 슬픈 울음소리가 그의 귓가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그는 힐끔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왼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오른손을 왼손에 가볍게 겹쳐놓았다. 그러면서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으로 왼손에 반지가 끼어 있던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것은 바로 아내의 버릇이 아닌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그녀는 자주 그런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때 아내가 만지작거리는 것은 왼손에 끼어진 결혼반지였던 것이다. 그는 어떤 유혹을 받은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내가 처음으로 데이트하자고 했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
그녀는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을 어떻게 잊겠어요? 잠수함이 침몰하는 영화를 보러 갔잖아요."
"잠수함이 아니야. 호화 여객선이지."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그 뒤에도 몇 번이나 보았지만, 아내는 언제나 포세이돈을 잠수함이라고 말하고 했다.
"영화가 끝난 다음, 우리 둘은 야마시타 공원에 갔었죠."
그것도 사실이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서 바다 위에 한가롭게 떠다니는 배들을 바라보았으니까.
"내가 처음 당신 집에 갔을 때는 생각나?"
"물론 생각나고말고요.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 정도로 몹시 추운 날이었잖아요."
"그래. 온몸이 얼어붙는 혹독한 날씨였지."
"당신은 바지 속에 잠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건 아침에 황급히 옷을 갈아입어서 그래."
"거짓말. 내복 대신에 입었으면서."
그렇게 말하더니 그녀는 불쑥 쿡쿡거리며 웃었다.
"정말이라니까. 지금도 내복 따위는 안 입잖아?"
"그때도 그런 식으로 발끈하면서 아니라고 잡아뗐어요."
"여자들은 쓸데없는 것은 꼭 기억한다니까."
그는 침대로 다가가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모나미 모습을 한 소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뺨을 살며시 손으로 감쌌다. 그의 손안에서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날 밤에도 이런 식으로 나를 감싸주었잖아요."
"그랬었지."
그때는 이대로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그 대신 그는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당신, 정말 내 아내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고개를 깊숙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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