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3)

개미남 | 2019.06.20 11:25:38 댓글: 0 조회: 176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40349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아내인가 딸인가

1.
헤이스케의 집은 미타카 역에서 버스를 타고 10여 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비좁은 골목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주택단지 북쪽 모퉁이에 있었다.
30평이 채 안 되는 마당이 딸린 낡은 주택을 산 것은 6년 전의 일이었다. 주택을, 더구나 단독주택을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주장한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다달이 집세를 낼 바에야 그 돈으로 대출 할부금을 갚자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지금이라면 30년에 걸쳐 상환하면 되잖아요. 당신은 30년 후에도 일을 할 테니까요."
대출금도 모두 빚이라고 생각하여 난색을 표하던 헤이스케에게 아내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60세가 되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구."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은 자꾸자꾸 고령화하고 있어서 당신이 나이가 들었을 땐 정년이 65세나 70세가 되어 있을 거예요."
"과연 그럴까?"
"내 말을 믿으세요. 그리고 만약에 60세에 정년퇴직을 한다고 하면, 그 이후에 일을 안 할 생각이세요? 세상을 너무 편하게 살려는 거 아니에요?"
그 말이 역전 만루 홈런이 되어 헤이스케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지금 사야 돼요.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 집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요. 당신도 늙어가지고 셋집에 사는 건 싫잖아요? 우리 집을 갖고 싶죠? 갖고 싶으면 사면 돼요. 지금 당장 사자고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하루 종일 쫑알쫑알대는 소리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그런 다음 아내의 행동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 그 주 토요일에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몇 군데 집을 보러 다니고 그 다음주에는 계약금을 지불했다. 은행 대출에서부터 이사 준비까지 아내는 모든 절차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운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해치웠다는 말이 꼭 들어맞아. 헤이스케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새로운 집에 살고 있었다. 그가 한 일은 단지 아내의 말에 따라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때 집을 산 것은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그때 사지 않았다고 해도 저축이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은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른 것이었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것 같다고 한다. 얼마 전에 2백 미터 떨어진 곳에 똑같은 크기의 주택이 매물로 나왔는데 그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가격이 붙어 있었다.
"내 말이 맞았죠? 당신에게 맡겨두었다면 평생을 가도 집을 못 샀을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오만함조차 느껴지곤 했다.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에 당연하기는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집을 몹시 사랑했다. 특히 손바닥만 하기는 하지만 마당을 무척 좋아했다. 아내는 자그마한 화단에 꽃을 가꾸면서 자주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귀에 익은 동요가 귀를 간지럽히기도 했다. 모나미와 같이 유아용 프로그램을 자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관을 돌아 우편물을 가지러 갈 때에는 염소 우체부 아저씨 노래를 읊조리기도 했다.
버스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 뒤, 헤이스케는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제단을 만들어 아내의 유골을 안치했다. 사고 다음날 현지에서 임시 장례식이 있었지만, 오늘 가까운 화장터에서 다시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사실은 아내가 사랑했던 이 집에서 하고 싶었지만, 좁은 골목에 밀려들 조문객들을 생각하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결정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물론 조문객도 많았지만 어디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기자들이 몰려들어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워졌던 것이다. 이 조용한 주택가에서 그런 소동이 일어났다면 그는 일일이 이웃집에 사과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될 뻔했다.
장례를 마친 다음에도 매스컴 관계자들은 그의 곁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에 가도, 무엇을 해도 카메라는 졸졸 쫓아다녔지만, 그것을 지긋지긋하게 느낄 기력도 최근 이틀 사이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많은 유족들 중에서 특히 헤이스케가 카메라 세례를 받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불행과 행운을 동시에 체험했다는 점에서 화젯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불행이란 말할 것도 없이 아내의 죽음이었고 행운이란 딸의 기적적인 소생이었다.
"부인의 장례식을 마친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오쿠로 교통 사장의 사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국에서 격려 편지가 쇄도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질문은 이 정도가 고작으로 그다지 다양하지 못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비슷비슷한 대답을 반복하면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본래 말재주가 없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 짜낸 지혜이기도 했다. 그러나 "따님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실 생각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했다. 오히려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겠느냐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그 자신도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계속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그는 아내의 위패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최근 들어 딸아이와 차분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아버지로서는, 쉽게 상처를 입는 연약한 소녀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생각만 해도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쉽게 상처를 입는 연약한 소녀라는 이미지 자체도 그가 겪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쉽게 상처를 입고, 어떤 식으로 연약한지조차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자신이었다면 아내는 틀림없이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잘 해냈을 것이라고, 그렇게 의미 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집 안에 제단을 설치하고 나서 그는 상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벽시계는 오후 5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곧 저녁식사 시간이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갑과 자동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조금이라도 식사를 해주기를, 그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집을 나섰다.
모나미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지만 원래의 그 아이가 완전히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라 마치 죽음의 건너편에 몇 가지를 두고 온 아이 같았다. 그것은 표정이고 말이며, 아직 나이 어린 소녀다운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어서 의사를 표현하지만 아직 활기찬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위로를 하고 말을 걸어도 감정이 없는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볼 뿐이었다.
의학적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한때는 식물인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모나미의 뇌는 완전히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었다. 역시 정신적인 충격이 원인일 것이다. 의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애정과 인내심으로 대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며 최대의 치료법이라고 덧붙였다.
어제 점심시간에는 고가네이에 있는 뇌병원에도 가보았지만, 그곳에서 받은 진단 결과도 비슷했다. 담당의사는 오히려 그 정도 참사에서 상처가 거의 없다는 것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6시 정각이었다. 그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 매스컴 관계자들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죽음의 늪에서 살아 돌아온 모나미의 모습과 육성을 얻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도저히 취재에 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참아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 일단 오늘은 그들도 약속을 지켜준 것 같다.
모나미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들어가자 담당 아주머니가 막 저녁을 가지고 들어오는 참이었다. 오늘 저녁은 구운 생선과 채소 조림, 그리고 된장국이 전부였다. 그는 쟁반을 받아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고는 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모나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침대 옆에 있는 보조 의자에 앉았다. 최근 며칠 동안 피로가 쌓인 탓인지, 바닥이 없는 늪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모나미는 거의 숨소리를 내지 않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배와 가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아서, 가끔 호흡이 멈추지 않았는지 확인할 정도였다. 그러나 핑크빛으로 물든 불그스레한 뺨이 그런 불안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주었다. 어제부터는 피부의 혈색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모나미만이라도 살아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구원이었다. 만약에 딸아이마저 잃어버렸다면 자신은 틀림없이 미쳐버렸으리라.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딸의 옆에 있어도 구원을 받았다는 생각보다 아내를 잃어버린 슬픔이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고 싶을 만큼 분노가 밖으로 터져나왔다.
왜 우리 가족이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하는가! 딸이 살았다는 것만으로 내가 행운의 사나이라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나는 불행의 늪에 빠져 있다! 당치도 않은 불행이 나를 습격한 것이다‥‥‥!
그는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 요즘 들어 살도 찌고 잔주름도 늘었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눈웃음에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아내의 동그란 얼굴을 좋아했다. 말이 많고 고집이 세며 남편을 존경하지는 않았지만, 사소한 일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앞뒤가 분명한 성격은 함께 있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가 배어나왔다. 또한 머리도 좋고 모나미에게도 좋은 어머니였다.
딸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끊임없이 아내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처음 만났을 때, 첫 데이트를 했을 때, 처음으로 혼자 살고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 갔을 때, 나오코는 그보다 3년 늦게 입사한, 같은 회사 여직원이었다. 교제기간은 2년으로 프러포즈는 단순하게 "결혼해줘"였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듣자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웃음이 가라앉은 다음 너무나 간단하게 "좋아요"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꿈처럼 달콤했던 신혼생활, 임심, 출산, 그리고‥‥‥.
기억은 갑자기 며칠 전에 있었던 임시 장례식장으로 날아갔다. 의자에 혼자 앉아 있던 그에게 말을 걸어온 사내가 있었다. 서른 정도 됐을까. 체젹이 좋은 그 사내는 소방서 직원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와 그의 동료가 아내와 딸아이를 절벽 아래에서 끌어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이스케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들이 없었으면 모나미도 이 세상 공기를 호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방서 직원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따님의 목숨을 구한 사람은 우리가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헤이스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발견했을 때, 절벽 아래에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부인이 혼자 쓰러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따님이 숨어 있는 것처럼 부인 밑에 깔려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부인은 따님을 살려내려고 온몸으로 유리 파편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유리조각에 찔려 부인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따님에게는 상처가 거의 없었던 겁니다. 그 말을 꼭 해드리고 싶어서 일부러 말을 걸었습니다."
그 순간, 헤이스케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소리를 내며 툭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내어 대성통곡했다. 그때를 떠올리자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매일 어둠이 깊어지면 혼자 눈물을 흘리곤 하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빨리 눈물샘이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지그시 눌렀다. 콧물까지 닦은 손수건은 촉촉이 젖어버렸다.
"여보, 여보, 여보‥‥‥."
자신도 모르게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구부리고 머리를 싸안았다.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보."
그는 흠칫 놀라 문을 쳐다보았다. 누가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문은 그대로 닫혀 있고 문밖의 복도에도 누군가가 있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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