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53) ㅡ 최종회

개미남 | 2019.06.18 10:27:19 댓글: 1 조회: 202 추천: 2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39000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 - 28.

머뭇머뭇 망설이면서도 어느새 시즈나는 가게 앞에 와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한 장의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도가미 정> 아자부쥬반 점의 개점 기념 디너 모임에 초대된 것이다. 카드에는 '꼭 와요.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손으로 직접 쓴 메모가 있었다. 유키나리가 쓴 것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눈앞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저도 모르게 멈칫 뒤로 물러선 시즈나에게 턱시도 차림의 유키나리가 환한 웃음을 던져왔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잘 오셨습니다. 자, 이쪽으로."
유키나리는 시즈나를 안쪽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기둥으로 에워싸인, 언젠가 그가 마음에 꼭 드는 자리라고 했던 좌석이었다.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종업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시즈나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둘러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에게 보낸 초대장은 날짜가 하루 빠르게 되어 있어요. 진짜 개점일은 내일입니다."
시즈나는 눈을 깜빡이며 유키나리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일을?"
"당신과 단둘이서 축하하고 싶었어요. 그냥 그것뿐입니다. 거짓말을 해서 미안해요." 시원하게 말해버린 뒤, 유키나리는 머리를 숙였다.
"나한테는 더 이상 볼일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신가요?"
"그럼 내 쪽에서 묻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나한테는 볼일이 없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앞으로 평생 만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인가요?"
유키나리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 기세에 눌려 시즈나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는 아니예요." 그는 말했다. "나한테는 당신이 필요해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말이 시즈나의 가슴속 남모르는 응어리를 꾸욱 움켜쥐었다. 그 힘은 너무도 강력했다. 그녀는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아요." 유키나리는 조그만 케이스를 내밀었다. 반지 케이스였다. "부디 받아줘요."
시즈나는 심장의 고동이 거칠게 뛰는 것을 느끼며 머뭇머뭇 손을 내밀었다. 할 말을 잃은 채 케이스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 담겨진 반지를 본 순간, 그녀의 가슴은 다시 한 번 크게 뛰었다. 그녀는 유키나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걸?"
"그 반지를 당신에게 선물하는 게 내 역할이었잖아요?" 유키나리는 온화하게 웃었다. "나도 당신들과 한 인연의 끈으로 엮이고 싶군요."
시즈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감싸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따스하고 부드럽고 그립고 다정한 것이었다.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눈물이 넘쳐흘렀다.
그 반지는 바로 그 반지, 유키나리가 시즈나에게 선물하게 하려고 고이치가 준비했던 반지였다. - The end -









옮긴이의 말



살아남은 세 사람의 행복한 범인 찾기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의 뒤에는 살아남은 가족이 있다. 그 충격과 상실의 상처는 슬픔이니 아픔이니 하는 섣부른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크나큰 '무언가'일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작품 <<유성의 인연>>은 강도 살인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나이 어린 유족의 이야기이다. 시사성이 강한 주제로 2008년 상반기에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목록에 올랐다.
어느 날 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부모의 비명횡사에 어린 3남내는 맹세한다.
"그래. 만일 범인이 누군지 알면 우리 셋이서 꼭 죽이자."
그로부터 14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사건의 진상은 오리무중인 채, 공소 시효가 코앞에 닥쳤다.
자칫 서글픈 역경의 줄거리가 될 것 같지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오히려 스릴 넘치는 코믹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바로 지금의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경쾌한 오락성과 드라마틱한 재미를 충분히 담고 있어서 <<유성의 인연>>은 지금까지 발표된 그의 수많은 소설을 뛰어넘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 피해자의 유족이라도 살아남은 자는 어떻든 즐겁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적 고통, 말 못할 외로움, 수없이 부딪히는 장벽이 어찌 없었을까. 하지만 고이치와 다이스케. 그들의 어린 누이 시즈나가 의지할 친지 하나 없이 성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작가는 대담하게 생략하였다. 그리고 한 가족이라는 인연의 끈으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그들은 세상 그 무엇도 무섭지 않은 스릴 만점의 '사기 작전팀'으로 성장해버렸다.


우리. 저 별똥별 같다.
기약도 없이 날아갈 수밖에 없고 어디서 다 타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이어져 있어.
언제라도 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고
그러니까 무서울 거 하나도 없어.


하지만 '순수한 사기 테크닉만으로 승부'하려던 세 사람의 사기 작전 때문에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일이 복잡하게 꼬여버린 것은 적잖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서 내가 행복해질 수는 없다. 진부하지만 절대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나 할까.
피해자의 유족에게 범인을 찾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이란 고인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자 관문일 것이다. 고이치의 말처럼 유족의 삶은 사건이 해결된 다음에나 정식으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에 집착하는 삶이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인연이 서로를 이어주는 든든한 끈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얽어매는 밧줄일 수도 있는 것처럼.
<유성의 인연>은 집착과 얽매임이라는 한없는 무거움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몹시 가볍게 날아오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 번째 키워드는 오로지 진실만을 바라보기. 그리고 두 번째 키워드는 사랑이다. 더 많은 우리 독자들이 그것을 발견해주기를 빌어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이른바 '도구 사용에 빈틈이 없는 각본'으로 유명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그 소도구에 일정한 특징이 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해주신 하야시라이스의 맛. 한밤중에 얼핏 본 용의자의 얼굴은 어린 소년의 망막에 낙인처럼 찍혔고 소중한 물증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냄새가 배어든다. 그런 본능적 감각이 중요한 단서가 되어 사건은 하나둘 풀려나간다. 어쩌면 작가는 가족의 인연을 이어주는 끈이 그런 본능적 감각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시즈나의 사랑이었다. 그녀는 진심 어린 사랑 앞에서 더 이상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수없이 지어낸 거짓 이름 대신, 그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녀 마음의 벽은 각설탕이 녹아내리듯 스르르 무너졌다.
빈틈없는 전개와 수많은 복선. 충격적인 반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에서 항상 발견되는 장점이지만, 이 소설의 결말만은 특히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독자에게 선물해줄 것이다. 이만큼 '따스하고 부드럽고 그립고 다정한' 선물을 받은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저 흐뭇하고 또 흐뭇할 뿐이다. 그다음에 밀려오는 감동의 눈물 글썽글썽.
생각건대, 돌연한 사건으로 혈육을 잃은 유족. 그래도 어떻든 살아가야 하는 유족의 아픔은 이만큼 따스하고 부드럽고 그립고 다정하게 감싸주는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리라.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에게 무심코 던져지는 편견이나 무관심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작가는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가장 멋진 캐릭터는 바로 도가미 유키나리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그저 역자의 개인적 취향일 뿐이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밖에도 마음껏 빠져들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넉넉히 준비해두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등장인물 각자의 시점이 적절히 배치되어 다양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음미해볼 대목이다.
인물의 감정이나 상항 묘사에 별다른 수식을 붙이지 않는 담백한 문체는 독자에게 마음껏 추리를 펼쳐나갈 '여백'을 제공한다는 것도 히가시노 추리소설의 큰 장점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인기의 여세를 몰아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텔레비젼 드라마로 방송되었다. 작가가 넉넉히 마련해놓은 여백에 드라마 감독은 어떤 해석과 재미를 붙여넣었을지 자못 기대가 크다. 이미 이 책을 읽은 독자 역시 저마다 감독이 되어 머릿속에 나만의 드라마가 완성되어 있을 테니 그것고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묵직한 중량감을 가진 소설이지만, 여러 번 거듭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꼈던 행복한 번역 작업이었다. 독자 여러분께도 한 번이 아니라 최소한 두 번 이상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일본에서 통용되는 '양식'이라는 명칭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식'이라고하면 서양에서 들어온 요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서양풍의 일본 음식'이라는 말을 줄여서 쓴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 소설의 중심 소재가 된 하야시라이스는 얇게 썬 쇠고기와 양파를 버터에 볶아 레드 와인, 데미그라스 소스와 함께 오래도록 끓인 것을 밥에 얹어 먹는 요리.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요리법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일본 양식'의 하나이다. 일본의 '양식당'에서는 하야시라이스 외에도 돈가스, 민치가스, 카레라이스와 같은 메뉴가 등장한다. 모두가 서양풍의 맛일 뿐, 서양에 이것에 해당되는 요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돈가스를 포크커틀릿, 하야시라이스를 'Hashed beef with Rice(밥과 함께하는 얇게 저민 고기)'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일본어의 잔재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까. 우리나라에서 한때 '경양식'이라는 것이 유행하였지만, 그것과도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여 원서 그대로 '양식당'이라고 번역하였음을 밝혀둔다.

양윤옥

추천 (2) 비추 (0) 선물 (0명)
IP: ♡.245.♡.68
지평선2 (♡.255.♡.91) - 2019/06/18 11:18:22

내내 소설과 함께 추리해오면서 읽어보언 글이,
좋은 결과에 마음도 세 형제와 함께 무거운 짐을 부려놓은듯 한 느낌입니다.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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