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48)

개미남 | 2019.06.17 11:42:11 댓글: 0 조회: 111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38547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 - 23.

"잘도 그런 거짓말을!" 고이치는 어금니를 악물고 마사유키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거짓말이 아니야. 만일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모든 일의 경위를 말하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하기무라 형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고이치는 다이스케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동생은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 어깨를 다독여 다시 자리에 앉혔다.
"좋아요. 들어보죠." 고이치는 마사유키에게 말했다.
하기무라 형사 일행이 온다면, 고이치 자신은 어찌됐건 다이스케까지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일이 흘러가는 대로 맡겨보자. 하고 고이치는 각오를 다졌다.
마사유키가 아들에게 말했다.
"얘. 내 방에 가서 책상 맨 밑 서랍 안에 있는 검은 커버의 노트를 가져와. 안은 아직 읽어보지 말고."
"검은 커버의‥‥‥, 알겠습니다." 유키나리는 방을 나갔다.
마사유키가 다시 고이치와 다이스케를 번갈아 보았다.
"나에 대해서는 어디서 알았는가?"
"형사에게 들었습니다." 고이치가 대답했다. "<도가미 정>이라는 식당에 대해 뭔가 짚이는 게 없느냐고 묻더군요. 자세한 얘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서 동생과 둘이 식당에 가봤어요. 간나이의 본점입니다. 그래서 당신 얼굴을 확인한 거예요."
"흐흠. 그랬군. 하지만 이상하네. 그 가게에서 내가 겉으로 나서는 일은 거의 없는데?" 마사유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아이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얘기도 좀 듣고 싶네만. 뭐 그건 나중에 들어도 되겠지. 아마 그 다카미네라는 아가씨하고도 관계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네만."
이 사람도 시즈나를 수상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고이치 형제가 침묵하고 있자 마사유키는 알겠다는 듯 턱을 끄덕였다.
"우리 식당 요리는 먹어봤던가?"
"예. 하야시라이스를." 고이치는 말했다. "약간 바꾸기는 했지만 그건 우리 아버지의 맛이었어요."
마사유키는 뺨을 풀며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아버님은 위대한 요리사였어. 독창적이고 대담하고. 그러면서도 지극히 섬세하게 맛을 조종하는 천재였다네. 단지 안타깝게도 요리 이외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강했어. 그렇게 도박을 좋아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도가미 정>이 아니라 <아리아케>가 유명한 식당이 되었을 게야."
"무슨 말이지요?"
고이치가 물었을 때, 유키나리가 돌아왔다. 손에 노트를 들고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나서 마사유키는 말했다.
"자네가 간파해낸 대로 우리 식당의 맛은 아리아케 씨가 만든 것을 베이스로 쓰고 있어."
"살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레시피를 훔쳐온 건 인정한다는 겁니까?"
"아니, 훔친 게 아니야. 내가 샀네."
"샀다고요?"
"음. 50만 엔에 샀어. 이것이 그 물건이야." 마사유키는 노트를 펼쳐 고이치 앞에 놓았다.
그것을 보고 고이치는 헉 숨을 삼켰다. 그 노트에는 복사용지가 차례차례 붙어 있었다. 그 내용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고이치 자신이 잘 아는 것이었다.
유키나리가 곁에서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이건‥‥‥, 그 레시피 노트?"
"네가 실물을 본 적이 있었나?" 마사유키가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이 친구들이 보여줬어요. 그보다 아버지. 이걸 샀다는 게 사실이에요?"
"사실이야." 마사유키는 고이치 형제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무렵. 아리아케 씨는 도박에 빠져 있었어. 내가 그를 만난 것도 그런 도박을 하는 곳이었지. 하긴 나야 그 가게에 배달을 해주러 간 것뿐이었네만."
사설 도박장 얘기구나. 하고 고이치는 생각했다.
"거기서 내가 아리아케 씨와 잠깐 말다툼을 했어. 이런 한심한 요리를 내놓다니 창피하지도 않으냐는 소리를 들었지. 가만 들어보니 아리아케 씨도 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거야. 요리 솜씨라면 나도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당신 요리는 얼마나 대단하냐고 나도 한바탕 대들었지. 그래서 그다음에 그의 가게, 즉 <아리아케> 식당에 가게 된 거라네." 마사유키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듯이 먼눈을 한 뒤에.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요리를 먹어보고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 그때까지 내가 양식당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혼자 품고 있던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요리였거든. 어째서 우리 식당이 인기가 없었는지. 그제야 겨우 깨달은 것만 같았다네. 기억에 남는 맛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실감했어. 어떻게 하면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나도 이런저런 궁리해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염치고 체면이고 돌아볼 것 없이 아리아케 씨에게 물어봤어. 하지만 물론 가르쳐줄 리가 없지. 스스로 연구해내라는 말만 들었어."
"그럼 어째서 이 레시피를?" 고이치가 물었다.
"우리 식당에 돌아와 나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어. 어떻게든 그 맛을 만들어내려고 말이지. 하지만 어떻게 해봐도 똑같이 만들어낼 수가 없더라고. 나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초조해하던 무렵에 아리아케 씨에게서 연락이 왔어. 자기 레시피를 사지 않겠느냐. 그런 얘기였어."
"아버지 쪽에서요?"
"돈이 급해서 그렇다고 했어.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갔어. 그가 도박으로 상당한 빚이 있다는 소문이 내 귀에도 들어와 있었거든. 아마 그 빚에 쫓기고 있었을 게야. 50만 엔이라는 가격도 아리아케 씨 쪽에서 먼저 제시했어. 아마 여기저기서 돈을 긁어모았는데 그만큼의 돈이 모자랐던 모양이야."
"그래서 아버지가 그 레시피를 사셨어요?" 유키나리가 물었다.
마사유키는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 곧바로 은행에 나가 돈을 인출해서 우편환으로 송금했어. 어물어물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그 레시피를 빼앗길까 봐 걱정이 됐거든. 그리고 그다음에 아리아케 씨에게서 연락이 왔어. 레시피를 복사해뒀으니 가지러 오라고. 당장 그날 밤으로 내가 <아리아케>에 찾아갔지. 우리 식당 뒷정리를 마치고 가야 했으니까 꽤 늦은 시간이었어. 뒷문 쪽으로 들어오라고 했기 때문에 가게 뒤로 돌아서 들어갔어." 여기에서 마사유키는 잠시 말을 끊고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그때, 누군가가 뒷문 쪽에 있었어. 체격을 보고 아리아케 씨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어. 그 사람은 안에 들어가는 참이었지."
고이치가 윗몸을 앞으로 바짝 내밀었다. "뭐라구요‥‥‥?"
"나로서는 그런 일에 딴 사람과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 그래서 그늘진 곳에 숨어서 그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 어쩌면 나처럼 아리아케 씨에게서 레시피를 사들인 요리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만일 그렇다면 내가 아리아케 씨한테 속았구나. 그런 의심도 했었어. 참으로 뻔뻔스러운 이야기네만." 엷은 웃음을 보인 뒤, 마사유키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다시 말을 이었다. "10여 분이 지났던가? 다시 뒷문이 열리더니 남자가 나왔고 그 사람은 뛰는 걸음으로 사라졌어. 그걸 다 지켜본 뒤에 나는 뒷문을 열고 안에 대고 소리를 내봤어. 그런데 대답이 없었지.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어. 거실 미닫이문이 열려 있더라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네."
고이치는 14년 전에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장면을 보았다면 마사유키가 비명을 질렀다 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하지만 도망쳐 나올 때, 선반 위에 놓인 복사용지가 눈에 들어왔어. 그게 바로 이 레시피 복사본이었어. 나는 그걸 집어 들고 그대로 뒷문으로 도망쳐 나왔어." 그렇게 말하고 마사유키는 다이스케 쪽을 보았다. "자네가 나를 목격한 건 아마 그때일 게야. 나도 반쯤은 넋이 나간 상태였으니까 가까이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건 전혀 알지도 못했네."
"거짓말이야." 다이스케는 컬컬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 얘기, 다 거짓말이야!"
"믿기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사실이라네." 마사유키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죄도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런 식으로 내 손에 넣은 레시피를 바탕으로 우리 식당에 <아리아케>의 하야시라이스를 내놓았어. 그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아서 <도가미 정>은 나날이 번창한 거야. 하지만 커닝으로 좋은 점수를 따 봤자 그게 자랑거리가 될 리 없지. 나는 항상 뒤가 꺼림칙한 마음으로 살아왔네. 한시라도 빨리 <아리아케>의 레시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늘 초조했어.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반대로 <아리아케>의 맛은 <도가미 정>의 이름으로 계속 퍼져가지만 했어. 더 이상 나 자신의 맛으로 돌아갈 도리가 없을 만큼 말이야."
마사유키는 양 무릎에 손을 짚고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내가 살겠다고 자네들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된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뭐라 사죄할 말이 없네. 참으로 미안하네."
다이스케가 벌떡 일어섰다.
"그런 소리, 필요 없어요. 레시피를 베껴먹었건 말건 그런 건 아무려나 상관없다구요. 그보다 살인 쪽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쪽을 실토하라고요!"
"진정해. 다이스케."
"이런 사람이 하는 말을 형은 믿겠다는 거야? 틀림없이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야!"
"이런 상황에 열을 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어차피 진실은 금방 밝혀져.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려 봐." 고이치는 마사유키를 보았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겠지요? 뭔가 증명할 만한 게 있습니까?"
"하기무라 형사가 도착하거든 보여줌세." 마사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을 보고 고이치는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마사유키의 말은 이치에 어긋난 점이 없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언뜻 생각나서 하는 변명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당시, 사건 전날 낮 시간에 어머니 도코가 도서관에서 목격되었다는 것을 고이치는 떠올렸다. 평소에 어머니가 도서관 같은 데 가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목적이 레시피를 복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면 이야기가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도가미 마사유키 이전에 찾아왔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대체 누구란 말인가. 고이치로서는 도무지 짚이는 데가 없었다.
인터폰 차임벨이 울렸다. 모두가 일제히 얼굴을 들었다.
유키나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이치는 마사유키를 응시한 채 침묵에 잠겨 있었다. 마사유키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유키나리의 안내를 받아 하기무라 형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가시와바라가 나타났다.
"지난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마사유키를 향해 인사한 뒤, 하기무라는 고이치를 보자마자 뜻밖이라는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나아가 다이스케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는 화들짝 놀라는 얼굴을 했다. "자네, 혹시 다이스케 군?"
다이스케는 어색하게 시선을 떨어뜨린 채였다.
"연락이 된 거야?" 가시와바라가 고이치를 보았다.
"이 녀석하고 겨우 연락이 됐어요. 가시와바라 씨는 수사에 대한 건 경찰에 맡겨달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우리 둘이 <도가미 정>에 가봤습니다. 이 사람 얼굴을 동생에게 보여줬더니 자신이 목격한 범인이 틀림없다고 해서 오늘 이렇게 찾아온 참이예요."
"찾아왔다고?" 하기무라는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 두 친구가 우선 아들에게 말을 했다는군요. 우리 아들도 형사들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뭔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지 여기 이 두 친구를 불러들여서 모든 것을 명백히 밝히자고 마음을 먹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도 내가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오시라고 해서 죄송하군요." 마사유키의 설명은 교묘했다. 고이치 일행이 형사인 척 그에게 덫을 치려고 했다는 것을 슬쩍 덮어주고 있었다.
"당신이 <아리아케> 사건의 진상을 아신다고요?" 하기무라가 물었다.
"진상이라고 할 건 아니에요. 유감스럽게도 범인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내내 감춰왔어요."
마사유키는 레시피를 입수하게 된 경위를 다시 한 번 하기무라에게 말했다. 하기무라는 선 채로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놀람과 당혹의 빛이 번지고 있었다.
이윽고 가시와바라가 입을 열었다.
"도가미 씨. 그 이야기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군요.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면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14년이나 지난 일이라면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요.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침착한 어조로 말한 뒤, 마사유키는 하기무라를 보았다. "현장에 범인의 것으로 여겨지는 유류품이 있었을 거예요. 투명한 비닐우산. 그렇지요?"
하기무라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고이치 쪽을 돌아보았다.
"비닐우산에 대한 이야기는 공표된 적이 없는데? 자네가 말했나?"
"아니에요. 내가 말하기 전부터 도가미 씨는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범인이라고 확신했던 건데‥‥‥." 고이치는 뒷말을 어물거렸다.
"그러면 어떻게 도가미 씨는 그걸 알고 있지요?" 하기무라가 마사유키에게 물었다.
"간단한 일입니다. 그 우산이 내 것이었거든요. 그날 밤. 나는 우산을 들고 <아리아케> 식당에 갔었어요. 비닐우산을 말이지요."
"그걸 거기에 잊어버리고 왔다. 그런 이야기입니까?"
"아, 그렇지 않아요. 나는 우산을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하기무라가 턱을 쭉 내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보여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마사유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이치는 팔짱을 낀 채 침묵하고 있었다. 어떻든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옆자리의 다이스케도 말없이 몸을 숙이고 있었다.
"이거 참, 놀랍네." 중얼거리는 하기무라 형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그 곁에서는 가시와바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발소리가 들리고 마사유키가 돌아왔다. 그는 손에 보자기로 감싼 길쭉한 막대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게 뭡니까?" 하기무라가 물었다.
"자, 한번 풀어보세요." 마사유키가 하기무라에게 건넸다.
하기무라가 보자기를 풀어낸 순간, 고이치는 앗 하는 소리를 올리고 말았다. 보자기에 싸여 있던 것은 기다란 투명 봉투에 든 비닐우산이었다.
"그날 밤 나는 분명히 우산을 들고 <아리아케>를 나왔어요." 그렇게 말하고 마사유키는 다이스케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그것까지는 못 본 모양이더군. 하긴 우산을 들었다고 해도 펼쳤던 게 아니었으니 알아보기 어려웠을 게야."
"하지만 아까 당신은 현장에 남아 있던 우산은 당신 것이라고‥‥‥." 하기무라가 말했다.
"내가 깜빡 착각했던 거예요."
"착각?"
"그 집에 들어갈 때 뒷문에 있던 양동이에 우산을 넣어뒀는데, 내가 급하게 나오면서 깜빡 다른 우산을 들고 온 겁니다. 그걸 깨달은 건 <아리아케> 식당에서 한참 멀어진 뒤였어요. 나는 그 순간에 생각했습니다. 나보다 먼저 <아리아케>를 찾아왔던 사람이 들어가면서 우산을 접어 그 양동이에 넣어뒀는데 나가면서 그걸 안 가져갔구나 하고요."
하기무라가 눈을 하얗게 뜨고 들고 있던 우산을 응시했다.
"그럼 이 우산이 바로 범인의 우산?"
"얘기가 그렇게 되겠지요." 마사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일찍 내가 나서서 이런 사실을 밝혔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어요.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경찰이 나한테로 찾아올 거라고 각오하고 있기도 했어요. 현장에 남겨진 우산에는 내 지문이 묻어 있었을 테니까요. 그 지문을 근거로 나한테 찾아왔을 때 해명할 수 있도록 이 우산을 보관해두기로 한 겁니다. 비닐봉투에 넣어둔 건 범인의 지문이 지워질까 우려해서예요. 그런데 경찰이 안 왔어요. 14년 동안 나한테 찾아올 기미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찾아와서 내게 보여준 것이라고는 금시계니 오래된 사탕 통이니, 나로서는 전혀 짐작 가는 게 없는 물건들뿐이었어요. 그런 물건에 내 지문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산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일단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좀 두고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고이치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마사유키의 고백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다 지어낸 이야기고 우산도 그러기 위해 준비해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무리가 있었다.
"이 우산을 조사해주십시오." 마사유키는 하기무라에게 말했다. "깜빡 잘못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손잡이 부분에 후우 입김을 불어봤어요. 그랬더니 또렷하게 지문이 보였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손잡이가 아니라 우산 윗부분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내 지문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요. 아마 범인의 지문이 틀림없을 겁니다."
하기무라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우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얼굴을 들더니 마사유키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이상한 이야기예요."
고이치는 깜짝 놀라 하기무라 형사를 올려다보았다. 하기무라는 마사유키에게 말했다.
"그 말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추천 (0) 비추 (0) 선물 (0명)
IP: ♡.50.♡.203
22,487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제주소설가
2019-09-18
1
112
제주소설가
2019-09-06
2
355
제주소설가
2019-09-05
2
154
제주소설가
2019-08-29
3
418
제주소설가
2019-08-29
3
236
제주소설가
2019-07-19
2
422
제주소설가
2019-07-19
1
404
제주소설가
2019-07-19
0
355
고소이
2019-06-30
2
366
개미남
2019-06-21
0
315
개미남
2019-06-21
0
232
개미남
2019-06-21
0
210
개미남
2019-06-21
0
195
개미남
2019-06-21
0
183
개미남
2019-06-20
0
159
개미남
2019-06-20
0
146
개미남
2019-06-20
0
132
개미남
2019-06-20
0
139
개미남
2019-06-20
0
128
개미남
2019-06-19
0
163
개미남
2019-06-19
0
187
개미남
2019-06-19
0
144
개미남
2019-06-19
0
121
개미남
2019-06-19
0
139
개미남
2019-06-18
0
146
개미남
2019-06-18
0
232
개미남
2019-06-18
2
202
개미남
2019-06-18
0
128
개미남
2019-06-18
0
115
개미남
2019-06-17
1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