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36)

개미남 | 2019.06.15 10:39:00 댓글: 0 조회: 105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37428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 - 11.

카페를 나서자 유키나리는 택시를 잡았다. 다카미네 사오리를 먼저 태운 뒤 자신도 탔다. 가는 곳은 아자부쥬반이었다.
"새 체인점의 하야시라이스, 정말 기대되는데요? 어떤 맛이 나왔어요?" 택시의 움직임과 동시에 사오리가 물었다.
"그건 직접 확인해봐요. 자신은 있습니다."
"하지만 나처럼 아마추어가 시식해도 그리 대단한 평가는 못할 거고, 도가미 씨에게 별로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할 거 같은데."
유키나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먹어보기를 잘했다, 차라리 먹지 않는 게 나았겠다, 그런 정도만 얘기해주면 충분해요. 괜히 사양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해줘요. 그저 형식적인 공치사가 가장 곤란합니다."
"어쩐지 책임이 막중하다는 느낌인데요?"
"아, 그렇게 압박감을 느끼지는 말아요. 마음 편히, 알았죠?"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문득 진지한 얼굴로 돌아가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오늘 그녀의 태도에 유키나리는 가벼운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긴장되어 있고 어딘가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중간쯤부터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유키나리가 <아리아케>라는 양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쯤부터였다.
어쩌면 주인과 그 아내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좋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사오리는 친구의 부모가 돌아가셨던 때의 일이 생각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깜빡 무신경한 소리를 했구나 하면서 후회가 되었다.
유키나리가 <아리아케>에 대해 조사해보기로 한 것은 며칠 전에 형사들이 집에 찾아온 일 때문이었다. 그들이 수사의 목적을 명확히 밝혀주지 않는 통에 어쩐지 좋지 않은 뒷맛이 남고 말았다.
사쿠라기초의 가게에서 해묵은 사탕 통이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그게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게다가 <아리아케>라는 양식당 주인의 시계가 그 통에 들어 있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런 궁금증을 풀고 싶어서 유키나리는 <아리아케>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인터넷 신문기사 검색 키워드로 '아리아케'와 '양식당'을 쳐본 것이다.
기사는 금세 눈에 띄었다. 14년 전의 사건이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고 유키나리는 말문이 턱 막혔다. 강도 살인사건이라는 너무도 끔찍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형사들이 사탕 통, 특히 금시계에 집착했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깡통을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인이 훔친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깡통을 천장 위에 숨겨둔 사람이 곧 범인이라는 게 그들의 추리일 것이다.
경찰로서 그런 추리를 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아버지 마사유키를 의심하는 건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라고 유키나리는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요코스카의 양식당을 습격할 동기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아니, 그보다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언젠가 의심은 저절로 풀리겠지만, 내 아버지가 한때나마 용의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유키나리로서는 참기 힘든 일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유키나리가 생각에 잠겨 있자 사오리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아, 미안해요." 그는 웃는 얼굴을 지었다.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뭔가 어려운 걸 생각하고 계시나 봐요."
"왜요?"
"글쎄요, 표정이 그러셨어요. 미간에 주름이 파였고‥‥‥."
"아차." 유키나리는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 끝으로 쓱쓱 비볐다.
"미안해요. 무뚝뚝한 얼굴이었나요? 그리 어려운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역시 새 체인점을 열자면 고민할 일도 많으시겠지요. 그런 때에 집 구경을 시켜달라는 엉뚱한 부탁이나 하고, 정말 미안해요. 만일 어려우시다면 그렇다고 꼭 말해주세요."
유키나리는 당황하여 손을 저었다.
"어려울 게 뭐가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요? 벌써 부모님의 허락도 얻었어요. 걱정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미소 짓는 사오리를 보며 유키나리는 자신을 꾸짖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기색이 어쩐지 이상하다고 걱정했으면서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다니.
앞으로 몇 번이나 그녀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최소한 만나는 동안만은 딴 생각을 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 그녀와는 이제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ㅡ.
유키나리는 자신이 사오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마음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젊은 여성의 의견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를 만나고 싶어서 자꾸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냈다. 오늘의 시식회만 해도 그렇다. 의견을 듣고 싶은 것보다 그녀에게 자신 있는 작품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크게, 오로지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런 그녀가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붙잡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자신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고 유키나리는 체념하고 있었다.
"왜요?" 사오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유키나리가 물끄러미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유키나리는 황급히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두 사람이 탄 택시가 네거리에서 막 멈춰서는 참이었다.

빨간 신호를 보며 다카야마 히사노부는 하품을 했다. 회사에서 차로 귀가하는 도중이었다. 자동차는 2년 전에 구입한 폭스바겐의 비틀이었다. 선명한 노란색 차체가 마음에 들었다.
다카야마는 게임기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발매될 소프트의 마무리 작업으로 연일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지만, 드디어 일의 끝이 보여서 오늘은 오랜만에 이른 시간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별로 기분이 들뜨는 것도 없었다. 일찌감치 집에 돌아가봤자 즐거운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늘 하던 대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들고 들어가 녹화해둔 애니메이션 방송을 보며 혼자 저녁을 먹는 일뿐이었다.
다시 한 번 하품이 나왔다. 큼지막하게 입을 벌린 채 그는 무심코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숨이 멎을 만큼 화들짝 놀랐다. 벌렸던 입을 닫는 것도 잊고 허연 눈을 치켜떴다.
옆에 멈춰선 택시에 미나미다 시호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려고 했을 때 그쪽 택시가 움직였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던 것이다.
뒤쪽의 차가 클랙슨을 울려댔다. 다카야마는 당황해서 급히 비틀을 출발시켰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택시를 쫓았다. 어떻게든 그 옆에 가서 서보려고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문제의 여자는 뒷좌석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뒤에서만 보기에는 시호의 머리 스타일과는 달랐다. 그녀는 쇼트헤어였는데 택시에 탄 여자는 머리가 긴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흘끗 본 얼굴은 틀림없이 시호였다. 약간 인상이 다르지만, 많이 닮은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다카야마는 지금도 틈만 나면 시호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호가 떠나던 날을 생각하면 다카야마는 아직도 가슴이 먹먹했다. 목요일에 그녀를 나리타 공항까지 배웅해주자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전날 갑작스럽게 문자가 날아온 것이다. 지금 뉴욕행 비행기에 탑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얼굴을 보면 헤어지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냥 갈래요. 라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그 이후로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국제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편지가 오는 일도 없었다.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다카야마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가 먼저 연락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잊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잊을 수가 없어서 애만 태우는 나날을 보내왔다. 이번 소프트 작업이 유난히 오래 걸린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 그의 집중력 부족이었다.
그런데 그 시호가 있었다. 게다가 도쿄에ㅡ.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지금쯤 뉴욕에서 디자이너 조수 일을 하는 한편, 수업에 정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야 했다. 이런 곳에 그녀가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카야마는 택시의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든 다시 한 번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미나미다 시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돌아갈 수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오늘 밤부터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다른 차가 끼어들어 좀처럼 택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어쩌다 상당히 접근했어도 여자가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린 참이어서 얼굴을 확인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아자부쥬반까지 와버렸다.
네거리에는 차가 잔뜩 밀려 있었다. 그 택시는 다카야마의 차보다 네 대쯤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길인가. 하고 생각했을 때였다. 택시의 뒷좌석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남자의 뒤를 이어 그 여자도 내려섰다. 앞이 잔뜩 밀려 있어서 이쯤에서 그만 내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다카야마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집중하여 여자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와 나란히 등을 보인 채, 한 번도 뒤돌아보는 일 없이 멀어져갔다. 그 몸매는 시호를 꼭 닮아 있었다.
두 남녀는 모퉁이를 돌아 다카야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초조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잃어버리고 만다.
드디어 앞차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그는 죽을 둥 살 둥 차선을 변경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들어간 길은 일방통행이어서 차로 진입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모퉁이에서 좌회전을 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 복잡해서 어디를 어떻게 돌아야 조금 전의 길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카야마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차를 세워놓고 겅중겅중 뛰어나왔다. 오늘 밤 여기서 어떻게든 찾아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만날 기회는 두 번 다시 없다고 생각했다.
두 남녀가 들어갔던 길을 다카야마는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의 모습은 없었다. 그는 주르륵 늘어선 음식점의 불빛을 바라보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음식점의 어딘가에 그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시호를 닮은ㅡ 전혀 다른 타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녀라면ㅡ.
더 이상 돌아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카야마는 자리를 뜰 결심이 서지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어딘가에서 그녀가 나타날 거라는 희미한 기대감이 가슴에 떠돌고 있었다.
결국 그가 차로 돌아온 것은 30분이 넘도록 헤매고 다닌 뒤였다. 그의 비틀에는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었다.

유리문을 지나면서 하기무라는 슬쩍 긴장했다.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의 여자가 상냥하게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하신 손님이신지요?"
"아니, 식사하러 온 게 아니에요. 도가미 씨를 마중하러 온 사람입니다."
아아. 하고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무라 님이시군요?"
"그래요. 9시쯤에 와달라고 하셔서."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도가미 씨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이쪽에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안내해준 곳은 조그만 테이블 석이었다. 손님이 붐빌 때, 대기실로 사용하는 곳인 모양이었다. 역시나 잘나가는 가게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놓여 있는 가구류는 외국의 앤티크인 것 같았지만 옻칠을 모방하여 만든 벽은 일본의 전통미를 형상화한 게 틀림없었다. 양식당의 음식은 오히려 일본에서 만들어낸 식문화라는 자부심을 보여주려는 모양이었다.
물어볼 게 있으니 시간을 좀 내달라고 하기무라가 도가미 마사유키에게 전화를 한 것은 바로 1시간쯤 전이었다. 마중을 갈테니 현경 본부까지 동행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했다. 도가미는 용건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캐묻는 일 없이, 그러면 9시에 <도가미 정> 본점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응해왔다. 여전히 그의 어조에 주춤하는 기색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곧바로 도가미가 나타났다. 와이셔츠 위에 갈색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넥타이는 매고 있지 않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뇨, 일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하기무라는 가게 앞길에 차를 기다리게 해두었다. 물론 경찰차 같은 게 아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 가시와바라였다. 하기무라가 도가미와 함께 나가자 그는 일부러 차에서 내려와 머리를 숙였다.
"지난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아직도 뭔가 할 이야기가 있습니까?" 도가미는 가시와바라와 하기무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꼭 확인할 게 있어서요." 가시와바라가 말했다.
"어떤 일인지요."
"그건 그쪽에 가서 천천히. 네." 그렇게 말하더니 가시와바라는 차에 올랐다.
도가미를 뒷좌석에 앉히고 하기무라는 조수석에 올랐다. 도가미를 용의자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도가미 정> 본점에서 현경 본부까지는 자동차로 10분이 안 되는 거리였다. 도착하자 사전에 확보해둔 소회의실로 도가미를 안내했다.
"이런 곳에 와보는 건 처음이군요." 도가미는 하얀 벽뿐인. 살풍경한 실내를 둘러보았다.
"차 한 잔 드시겠습니까?" 하기무라가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보다 용건이라는 것은?"
도가미의 재촉에 가시와바라는 하기무라를 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무라는 방 한쪽에 놓여 있던 종이봉투를 회의 책상에 올려놓고 그 안의 것을 꺼냈다. 예의 사탕 깡통이었다.
"이 물건에 아직도 뭔가?" 도가미의 찌푸린 미간에 답답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것을 본 적이 없으시냐고 지난번에 문의했었지요." 가시와바라가 말했다. "본 적이 없다. 라는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거기에 대해 변경된 점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본 적도 없는 물건입니다. 그게 무슨?"
가시와바라는 윗몸을 앞으로 쓰윽 내밀었다.
"도가미 씨, 솔직히 말해주시지요. 정말로 모르십니까?"
"모릅니다." 도가미는 고개를 저었다. "왜 의심을 합니까?"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이 이 물건에 손을 댔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
"지문이예요. 깡통에 들어 있던 금시계에서 도가미 씨의 지문이 검출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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