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8)

개미남 | 2019.06.13 10:03:05 댓글: 0 조회: 111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36022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 - 3.

고이치의 보고를 듣고 다이스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시계는 아버지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면 되잖아? 그러면 얘기가 빨라질 텐데."
동감이라는 듯 곁에서 시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늘 그렇듯이 형제의 방에서 작전 회의를 하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 고이치가 앉고, 다이스케와 시즈나는 두 개의 침대 위에 벌렁 눕거나 책상다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다이스케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어린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너무 빠르면 도리어 안 좋은 거야." 고이치가 말했다.
"왜?"
"벌써 14년 전의 옛날 일이야. 아버지가 어떤 시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런 걸 똑똑히 기억한다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냐?"
"글쎄, 그럴까? 아버지가 그 시계를 무지 아꼈다는 건 나도 똑똑히 기억나는데? 그래서 형이 추억의 물건을 하나씩 챙기라고 말했을 때, 나는 당장 그 시계부터 생각했었다고."
옛집에서 금시계를 가져오던 때의 일을 다이스케는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동시설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이번 일로 그 유품을 내놓아야 했을 때, 그는 상당한 저항감이 있었다. 하지만 고이치의 설득을 받아들여 내놓기로 결심했다. 부모의 원수를 갚자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잘 들어봐. 그 시계는 사건 날 밤에 우리 집에서 도둑맞은 것으로 이야기를 짜 맞추려는 거야. 아버지와 엄마를 살해한 범인이 가져갔다. 라는 식으로 경찰이 생각해줘야 한다고."
"그거야 나도 알지."
"내가 시계를 척 보자마자 우리 아버지 것이라고 대답했다면 형사들은 반드시 이렇게 질문했을 거야. 그렇다면 왜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그 시계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보지 못했느냐고."
아. 하고 다이스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흘렸다.
"사건 직후에 형사들이 나한테 몇 번이나 없어진 물건은 없느냐고 물어봤어. 14년이 지난 뒤에까지 기억하고 있을 그런 뜻 깊은 시계라면 이미 그 시점에 없어졌다는 것을 당연히 알아챘어야 한다고. 물론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아버지 시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잖아?"
"하지만 그 시계가 아버지 것이라는 거. 경찰이 알아줄까?" 시즈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고이치는 쓴웃음을 지었다.
"경찰의 능력을 얕잡아보지 마. 더구나 내가 아버지 시계라고 단언을 했어도 그들은 반드시 뒤를 캐보려고 했을 거야. 결국 마찬가지라는 얘기야."
"게다가‥‥‥" 고이치는 말을 이었다.
"간단히 얻은 답보다 조금쯤 고생해가며 얻어낸 답이어야 더 고맙게 느껴지는 법이야. 아마 형사들은 아버지의 동창생들을 조사하고 다닐 거야. 몇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건 틀림없이 자기들이 선물한 시계라는 증언을 얻어내면 분명 펄쩍 뛰며 좋아할 거란 말이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고이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이에 다이스케도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렇지만 형은 정말 생각이 깊다고 내심 감탄했다.
"문제는 앞으로야. 우리가 쳐놓은 먹이를 경찰이 제대로 물어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말이야. 설마 내 쪽에서 '저기 먹이가 있소이다."하고 알려줄 수도 없고. 가시와바라 형사와 하기무라 형사가 얼간이가 아니기를 빌 뿐이야."
"근데 큰오빠. 형사와 연락을 주고받아도 괜찮아?" 시즈나가 물었다.
"수사 진행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과 간간이 연락을 취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그들이 나를 의심할 이유 같은 건 없어. 오히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은 시즈나야."
"나?" 시즈나가 자신의 가슴을 꾹 눌렀다.
"내 계획이 잘 풀려간다면 ㅡ 물론 반드시 잘 풀려야지 안 그러면 곤란하지만 ㅡ. 일이 그렇게 되면 경찰은 분명 도가미 마사유키를 주목할 거야. 그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서 조사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었지만. 그 시점에 다카미네 사오리라는 가공의 이름을 가진 여자에 대해 경찰이 눈치 챈다면 14년 전의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해도 뭔가 의심할 거라고. 그러니까 시즈나는 최소한 그 시점까지는 도가미 마사유키 앞에서 깨끗이 사라지지 않으면 안 돼."
고이치의 말에 시즈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다이스케는 감지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놀람과 긴장의 빛이었다.
"그럼 다카미네 사오리의 역할은 이제 끝이야? 그 레시피 작전은 어떻게 하고?"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사실 나도 시즈나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만 그 작전은 도가미 유키나리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어. 어쨌거나 도가미의 집에 잠입해야 하는 일이잖아? 아무리 시즈나라도 초대도 받지 않은 집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데?"
고이치가 침묵에 잠기는 것을 보고 다이스케는 허걱 숨을 삼켰다. 형의 계획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형. 그 짓을 또 하려고?"
고이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시즈나가 앉은 채로 등을 바짝 세웠다.
"또라니‥‥‥. 혹시 둘이서 몰래 들어가는 거?" 그녀는 오빠들을 번갈아 바라본 뒤에 고이치 쪽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건 안 돼. 그냥 평범한 집이 아니라니까?"
"그래. 위험해. 분명 보안경비 시스템이 빵빵한 저택일 거라고. 나야 물론 가본 적도 없지만."
"나는 오늘 낮에 슬쩍 둘러보고 왔어." 고이치가 말했다. "네 말대로야. 감시 카메라에 방범 카메라까지 이것저것 붙여놨더라. 몰래 들어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는 집이라도 도둑은 들어. 그렇다면 뭐, 나도 할 수 있겠지."
"안 돼!" 시즈나가 날카롭게 내뱉었다. "그건 절대 안 돼. 오빠는 프로 도둑도 아니잖아?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다고 해도 안 돼. 너무 위험해."
"나도 시즈나와 같은 생각이야. 도가미란 놈을 무너뜨리고 싶긴 하지만, 그 전에 형이 잡혀간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안 할 수가 없어. 전에도 말했지? 도가미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잡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걸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어. 아무리 경찰이 도가미를 주목하더라도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그자가 체포될 가능성이 희박하단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다이스케가 입을 웅얼거리고 있는데, 시즈나가 "내가 할래"라고 나섰다.
"역시 내가 할게. 그게 가장 좋아. 안전하기도 하고 흔적도 남지 않아. 오빠도 말했지? 레시피 작전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절대조건이라고. 오빠라면 프로 도둑처럼 몰래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렇다면 내가 하는 게 더 확실해. 나한테 맡겨." 그녀는 단숨에 말한 뒤, "제발!"하면서 양손을 맞댔다.
고이치는 컴퓨터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그 손으로는 이마를 짚었다. 드물게도 몹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고이치 역시 도가미 가의 저택에 몰래 들어가는 일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야시라이스를 바꾼다고 했지?" 그 자세 그대로 고이치가 말했다.
"뭔 소리?" 시즈나가 되물었다.
"지난번에 유키나리를 만났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지? 아자부쥬반 점에서 원조 하야시라이스를 낸다는 계획은 백지가 되었다고."
"응. 유키나리는 그렇게 말했어."
"도가미 마사유키의 명령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도가미 영감이 그런 말을 했을까?" 고이치는 의견을 청하듯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시즈나가 했던 이야기가 영향을 끼쳤다는 거야?"
"아마도. 요코스카에 있던 양식당이라는 말에 딱 감을 잡았는지도 몰라. 경영자가 죽었다는 것까지 유키나리가 말했다면, 정확히 <아리아케>라고 생각했다 해도 이상할 거 없어. <도가미정>과 <아리아케>의 하야시라이스가 똑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있다는 건 도가미로서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지. 또다시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거니까. 그래서 아자부쥬반 점에서 원조 하야시라이스를 내놓는 건 미리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때?"
고이치의 추리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다이스케는 알 수 없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게 지금의 이야기와 무슨 관계라도 있어?" 시즈나도 마찬가지 의문을 가진 모양이었다.
"생각을 좀 해봐. 시즈나는‥‥‥. 아니, 다카미네 사오리는 도가미 마사유키에게는 몹시 부담스러운 사람인 거라고. 그런 사람을 언제까지나 아들 곁에 있게 해줄 것 같아? 내가 도가미라면 아들에게 그런 여자는 만나지 말라고 할 거야."
"전에 만났을 때, 유키나리가 그런 말은 안 했어. 아니, 도리어 그쪽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아직 아버지에게서 그런 말을 못 들었을 뿐인지도 몰라. 말을 들었는데도 시즈나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뿐인지도 모르고. 어찌됐건 도가미는 두 사람이 더 이상 친해지지 않도록 가로막으려 할 거야. 그러니 다카미네 사오리를 집에 초대한다는 건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마침내 고이치가 하려는 말을 다이스케도 이해했다. 아, 그런가.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도가미의 초대를 받을 필요는 없어. 유키나리가 나를 자기 집에 데려가게 작전을 펴면 되는 거잖아?"
"아직도 모르는군. 도가미 마사유키가 그걸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야."
"그야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지. 유키나리 씨가 매사에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유키나리 씨?" 다이스케는 미간을 좁히며 시즈나의 옆얼굴을 보았다.
"아, 미안. 그 사람 앞에서는 항상 그렇게 부르니까 버릇이 되어버렸네. 아무튼 도가미 유키나리도 자기 아버지가 시키는대로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글쎄,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람. 상당한 파더 콤플렉스야.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아직도 부모하고 같이 사는 것 자체가 독립을 못하는 증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이 참, 그렇지 않다니까!"
시즈나의 말투가 갑자기 날카로워지는 바람에 다이스케는 놀라서 입을 헤벌렸다. 고이치도 허를 찔린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들의 반응에 그녀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들었다.
"아무튼 나한테 맡겨. 유키나리는 나한테 호감을 품었어. 그 사람은 내가 컨트롤해볼 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는 하지 않게 할 거야."
고이치는 뺨을 괴었다.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감이 대단한데?"
"지금까지 내가 된다고 했는데 안 된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어?"
"이번만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
"시즈나에게 일단 맡겨보자." 다이스케가 말했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구."
고이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경찰이 도가미를 주목하는 때가 우리로서는 타임 리미트야. 그때는 즉시 시즈나가 철수해야 돼. 알고 있지?"
"알아. 그때 이후로 유키나리와는 평생 만나지 않을 거니까."
고이치를 향해 대답하는 시즈나를 옆에서 지켜보며 다이스케는 강한 결의와 각오를 감지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또 다른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기무라는 가미오오카에 있는 제화점에 와 있었다. 구두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게 주인 모로이 다다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가게 구석에 있는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하기무라는 가방에서 비닐봉투를 꺼내며 용건에 들어갔다.
무로이 다다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시에 눈초리의 주름이 깊어졌다.
"야아, 이거." 무로이는 사랑스러운 것이라도 만지듯 비닐봉투에 든 시계를 손안에서 굴리고 있었다. 뒤로 뒤집어 새겨진 글자를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괴롭게 눈썹 양끝을 축 늘어뜨렸다. "틀림없어요. 이건 그때의 시계예요. 우리가 아리아케에게 선물한 겁니다."
"어디서 구입했었지요?" 하기무라가 물었다.
"아마 백화점이었을걸요? 친구 중에 야마모토라는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이 사러 갔을 겁니다. 뒷면에 글자를 새겨주는 가게가 거기 말고는 없었거든요. 이 시계를 이제 와서 만날 줄은 몰랐네. 야아, 이거 정말 놀랍군요."
그때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시계를 바라보는 모로이를 보며 하기무라는 몰래 오른손을 부르쥐고 있었다. 모로이가 착각하는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시계는 틀림없이 아리아케 유키히로의 물건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 시계를 어째서 형사님이 갖고 있지요? 아리아케가 살해된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무로이가 시계를 돌려주며 물어왔다.
"아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수사 중이라서."
"하지만 그 시계가 나왔다는 건 뭔가 단서를 찾았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 시계, 어디에 있었어요?"
"미안하지만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해결될지 어떨지, 그것만 알려주세요. 나는요, 항상 경찰을 믿어왔습니다. 아리아케를 살해한 범인 같은 거, 금세 잡아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잡기는커녕 이제 곧 시효가 닥친다고 하질 않습니까? 이건 정말 너무 심하죠. 어떤 일이든 다 협력할 테니까 뭐든지 말씀만 해주세요. 우리 친구들끼리 해마다 얼마나 원통해하는데요."
무로이의 마음은 잘 알고 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기도 했지만, 이런 곳에서 길게 이야기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하기무라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제화점을 뒤로했다.
걸음을 옮기며 즉시 가시와바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땠어?" 연결이 되자마자 질문을 던지는 건 가시와바라의 버릇인 모양이다.
"맞았어요. 아리아케 유키히로의 시계가 틀림없는 거 같습니다."
"예상했던 대로군."
"이제 어떻게든 자동차 절도범을 밝혀내야겠지요?"
"그거 말인데, 조금 전에 마음에 걸리는 정보가 들어왔어." 가시와바라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차 절도범, 죽었는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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