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16)

개미남 | 2019.06.11 18:43:20 댓글: 1 조회: 133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35116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1 - 16.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어?" 가시와바라가 물어왔다.
"아뇨, 딱히 볼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근처에 나온 길에 잠깐 뵐까 하고. 바쁘신데 방해가 되었습니까?"
고이치가 말하자 형사는 담뱃진으로 누렇게 된 이를 내보였다.
"관할서의 만년 말단형사 신세인데 바쁘다고 해봐야 여기저기 지원 나가는 것뿐이야. 잠깐 옆길로 새도 별 문제 없어. 요즘에는 나한테 별로 기대들도 안하니까 속이 편하네. 눈빛이 홱 변해서 뛰어다녔던 건 그때가 마지막이야."
그가 말하는 '그때'가 언제를 가리키는지는 고이치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14년‥‥‥. 솔직히 말해, 빨리 가버렸네요." 고이치는 말했다. "이제 곧 시효예요."
가시와바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요즘 들어 다시 한 번 수사를 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어. 이제 새삼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다 그런 거야. 이런저런 사건은 줄줄이 터지고, 그때그때 해결되지 않는 건 자꾸 뒤로 밀리게 돼. 그러고는 시효가 가까워지면 다시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봤자 쓸데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 14년 동안이나 단서가 나오지 않았는데, 시효 직전에야 뭔가 잡히다니. 그런 일은 거의 없으니까. 단순히 매스컴의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는 척하는 것뿐이야."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와바라 스스로는 잊은 듯했지만, 그는 4년 전에도 그 비슷한 말을 했었다. 도박 조직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오자 요코스카 경찰서도 현경 본부도 다시 양식당 부부 살해사건에서 철수해버렸던 것이다.
"역시 아무 진전도 없어요?" 고이치는 물었다.
가시와바라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유일한 단서가 그때의 그 몽타주인데 벌써 14년이나 지났으니, 사람 얼굴이란 건 변하는 거라서 말이야."
"그 몽타주 말인데요. 비슷한 사람을 하나도 찾지 못한 건 아니지요?"
"그야 비슷한 정도라면 몇 사람 있었지. 일반 시민에게서 제보도 많이 들어왔고. 그때마다 우리가 달려갔었어. 가나가와나 도쿄뿐만이 아니라 사이타마와 도치기까지 갔던 적도 있어. 하지만 전부 허탕이었어."
"그 사람들의 리스트, 지금도 갖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라니.몽타주와 비슷했던 사람들? 물론 보관되어 있겠지. 하지만 그건 왜?"
"아뇨, 그걸 좀 볼 수 없을까 해서요."
가시와바라는 그 즉시 의아한 얼굴이 되어 고이치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고이치는 시선을 돌리며 커피 잔을 입에 옮겼다.
"시효는 곧 다가오고, 어차피 경찰에서는 별다른 결과도 내주지 않을 거 같고, 그래서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한다는가."
"그거라면 그런 리스트는 필요 없을 텐데? 자네, 혼자서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 거야?"
"계획이라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유리문 너머로 거리를 바라보며 고이치는 말했다. 가시와바라가 지그시 쳐다보는 것을 뺨으로 감지했다.
"그럴싸한 사람을 찾아냈나?" 가시와바라가 물어왔다. "그래서 그 사람 이름이 리스트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려는 거 아니야?"
그 말에 고이치는 동요했다. 역시 형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을 정확히 맞혀냈다.
고이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가시와바라 씨께 상의하겠죠.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내 나름대로 조사해보는 것뿐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시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싫어서요."
가시와바라는 형사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을 고이치에게로 던져왔다. 고이치는 마음속을 읽어내려고 하는 힘을 느꼈다.
이윽고 가시와바라는 후유 한숨을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눈에 깃들었던 광채도 꺼졌다.
"그런 리스트를 민간인에게 내줄 수는 없어. 게다가 경찰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야. 아까도 말했듯이 시효를 앞두고 조금쯤은 움직이고 있어. 몽타주와 닮은 사람들도 다시 조사할 거고."
"그렇다면 다행이죠."
"근데 동생하고 누이는 어때? 요즘도 연락을 안 하나?"
"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몰라요."
"그래? 정말 소중한 혈육인데‥‥‥. 가족은 역시 함께 사는 게 좋아."
가시와바라의 말투에는 자신의 심정을 담은 듯한 진한 여운이 있었다. 고이치는 4년 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가시와바라는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지만 선천성 질병으로 몇 차례나 수술과 입원을 거듭한 끝에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중학교에 올라가기 직전이어서 교복까지 준비해두었다고 했다.
"가시와바라 씨. 요즘도 혼자 지내세요?"
"음."
"재혼은 안 하시고요?"
고이치가 말하자 가시와바라는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이런 찌그러진 고물 아저씨한테 누가 시집을 오겠어? 고이치 군이야말로 이제 슬슬 결혼하는 게 어때?"
"생각해본 적 없어요."
"새로운 가족도 아주 좋은 거야. 하긴 내가 이런 말 해봤자 설득력도 없겠지만." 가시와바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의 가슴팍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 실례. 라면서 전화를 꺼내더니 두세 마디 주고받은 뒤에 끊었다. "아, 미안. 호출이야.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미안하네."
"저야말로. 근무 중이신데 죄송해요."
"또 연락해." 가시와바라는 자신의 빈 잔을 손에 들고 걸음을 옮겼지만, 곧바로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뭔가 잡히면 반드시 나한테 연락해. 혼자서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요. 라고 고이치는 대답했다.
커피숍을 떠나는 가시와바라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며 고이치는 도가미 마사유키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이스케는 그 사건 때에 목격한 남자와 꼭 닮았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현 단계에서 도가미 마사유키는 사기 작전 타깃의 아버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시와바라와 그 일을 상의한다면 틀림없이 도가미 마사유키를 마크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현재 진행 중인 계획은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시와바라는 도가미 유키나리에 대해서도 조사할 것이고, 이윽고 다카미네 사오리라는 여성의 존재를 알아낼 우려도 있었다. 그녀가 시즈나라는 것을 알면 틀림없이 수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시와바라에게 그런 일로 추궁을 당하면 그걸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갈 자신이 고이치에게는 없었다.

도가미 유키나리가 기획한 사은회는 <도가미 정> 히로오 점에서 열렸다. 평소에는 휴업하는 일요일에 식당 문을 열고, 초대장을 받은 고객들이 도착하기를 유키나리는 오후 5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모임이 시작되는 건 6시부터였다.
명목은 사은회였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메뉴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기 위한 시식회였다. 그것은 물론, 이번에 오픈할 아자부쥬반 체인점을 위한 행사였다. 초대장을 받아든 단골들도 그런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가미 마사유키의 후계자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 솜씨를 보여주려나, 흥미진진하게 기대하며 찾아올 터였다. 일부러 따끔한 평가를 내릴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고 유키나리는 미리 각오하고 있었다.
5시 반쯤부터 손님들이 띄엄띄엄 식당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유키나리가 잘 아는 얼굴도 있었다. 성급한 단골 중에는 벌써부터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는 이도 있었다. 신점 오픈을 앞둔 축하회.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은회 시작은 6시부터였지만 식당 안에는 이미 음료와 가벼운 먹을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일찍 도착한 손님들은 그것을 들면서 담소하고 있었다. 좌석이 정해져 있었지만 입식 파티처럼 선 채로 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보였다.
유키나리도 그들의 대화에 함께하고 있는데, 접수처 담당 직원이 다가왔다.
"저쪽 손님이 초대장이 없으시다는데요." 그렇게 말하며 입구를 가리켰다.
그곳에 와 있는 것은 다카미네 사오리였다. 불안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알았어. 라고 말하고 유키나리는 그녀 쪽으로 향했다.
그를 보자 사오리는 구원자를 발견한 듯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초대장이 도착하지 않았어요? 우송했을 텐데."
"네. 받았어요. 근데 내가 가지고 있으면 잃어버릴 거 같아서 함께 오기로 한 친구에게 맡겨뒀어요. 초대장에 두 사람까지 와도 좋다고 해서요."
"그럼 그 친구가 곧 오실 모양이군요?"
"근데 그게요. 조금 전에 몸이 불편해서 못 오겠다는 연락이 와서요. 초대장 없이 참가할 수 없다면 저는 이대로 그냥 돌아가도 괜찮은‥‥‥."
"저런, 무슨 말씀을. 전혀 문제없습니다. 내가 직접 초대한 건데요? 자, 이쪽으로. 어서."
유키나리는 좌석 표를 확인해보고 그녀를 자리까지 안내했다. 구석 쪽의 테이블이었다.
"자, 그럼 편히."
"저어‥‥‥." 사오리가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나, 아무래도 이상하겠죠? 이런 곳에 여자 혼자서 오는 거."
"그렇지 않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동행이 있는데 나만 혼자 먹는 건 아무래도 좀 창피해요."
"아, 그런가?" 주위를 둘러보며 유키나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혼자 식사해도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젊은 아가씨는 그런 게 신경이 쓰이는지도 모른다.
"도가미 씨는 식사 안 하세요?" 사오리가 물어왔다.
"아뇨. 오늘은 나도 함께 먹을 거예요. 손님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먹어봐야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유키나리는 그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을 말했다. "아, 괜찮으시다면 내가 합석할까요? 원래 나 혼자 먹을 생각이었거든요. 물론 다카미네 씨가 싫지 않으시다면."
사오리의 표정이 문득 환해졌다.
"그렇게 해주실래요? 그러면 나도 한결 마음이 놓이고 어색하지도 않겠죠."
"알았어요. 담당자에게 준비하라고 하죠."
일단 사오리 곁에서 물러나면서 유키나리는 자신이 너무 염치 좋은 제안을 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반가워해주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의 말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6시가 되자 체인점 점장의 짧은 인사말이 있었고, 곧바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맨 먼저 몇 가지 종류의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하나같이 양이 적은 것은 되도록 많은 종류의 요리를 맛보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사오리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 몸짓의 의미가 유키나리는 하나하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뭔가 걸리는 점이라도?" 유키나리는 물어보았다.
"아뇨, 정말 맛있는데요?"
"내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 말하기 어렵겠지요? 식사가 끝난 뒤에 앙케트 용지를 나눠줄 테니까 거기에 느낌을 적어줘요. 어떤 신랄한 비평이라도 괜찮아요."
"아유, 신랄할 것까지야‥‥‥." 그녀는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처럼 초대해주셨으니 제가 생각한 그대로 적어볼게요."
"부탁해요."
머리를 숙이며,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유키나리는 느꼈다. 보통이라면 흔해빠진 찬사를 입에 올릴 자리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 점에서 그녀의 꼿꼿한 성품과 성실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오늘, 아버님은 안 오시는 모양이지요?" 사오리가 물어왔다.
"아버지는 참석하지 않아요." 유키나리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오늘 저녁의 모임은 내가 나를 위해 기획한 것이거든요. 아버지와는 관계가 없어요. 초대장도 내가 정했습니다."
"그러시군요."
"아버지한테 무슨?"
"아뇨, 별로." 그녀는 고개를 저은 뒤, 눈을 슬쩍 치켜뜨며 유키나리를 바라보았다. "<도가미 정>의 맨 처음 가게는 요코하마에 있었다죠?"
"맞아요. 사쿠라기초와 히노데마치 중간쯤에 있었어요."
"그즈음에 요코스카 쪽에 간 일은 없으셨나요?"
"요코스카? 아뇨, 나는 간 적이 없는데? 요코스카가 왜요?"
"아뇨, 그쪽으로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래요?" 유키나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째서 아버지에 대해 물은 뒤에 갑작스럽게 요코스카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하고 의아했다.
점장과의 상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떴을 때, 어느 부인이 유키나리에게 말을 건네왔다. 오래된 단골손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저기 저이는 누구야? 아주 예쁜 아가씨인데? 유키나리 씨의 여자친구?"
유키나리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초대 손님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거 같은데? 유키나리 씨도 마침내 좋은 사람이 생긴 모양이라고 우리 남편하고도 얘기했어."
"아, 아니예요.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휴, 좀 봐주세요."
식은땀을 흘리며 유키나리는 부인 앞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정말로 다카미네 사오리가 자신의 여자친구라면 잘해나갈 수 있을 듯한 마음이 머리를 스쳤다.
요리는 차례차례 진행되어 마침내 마지막 요리인 하야시라이스가 손님들 앞에 나왔다. 유키나리는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이 요리를 먹어본 손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럭저럭 손님들의 반응은 괜찮은 듯했다. 이렇게 맛있는 하야시라이스는 처음이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유키나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사오리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뺨은 새파랗고 얼굴 전체가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보였다. 붉어진 눈으로 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에서 눈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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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50.♡.0
연가99 (♡.234.♡.219) - 2019/06/11 20:18:05

와우...올려주셧내요..
감사히 잘 읽을게요.
오늘은 밤을 새야할것 같은 예감...
너무너무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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