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유성의 인연 - 히가시노 게이고 (4)

개미남 | 2019.05.28 12:47:23 댓글: 0 조회: 170 추천: 1
분류추리소설 https://file.moyiza.com/fiction/3926250
유성의 인연
- 히가시노 게이고



1 - 4.

이런 곳에 여관이 있었구나 ㅡ.
깨끗이 손질된 정원을 바라보며 고이치는 생각했다. 여러 가지 나무가 심어졌고 작은 등롱까지 있었다. 큼직한 돌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거기에 이끼가 끼어 있었다.
"선생님이 이래저래 생각해봤는데, 그냥 불이 났다는 걸로 하면 어떨까?"
노구치 선생이 말했다.
고이치는 담임선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불이 났다고요‥‥‥?"
"응. 너희 식당에 불이 났다고 얘기하자는 거야. 그래서 부모님은 병원에 실려 갔고 너희는 이쪽으로 왔다‥‥‥. 우선 그런 식으로 말해두는 게 어떻겠니?"
노구치는 부드러운 어조로 물어왔다. 평소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특징이었지만 오늘은 낮게 억누르고 있었다. 항상 이런 식으로 나직하게 말을 하면 '후루라기'라는 등의 별명은 붙지 않았을 텐데. 담임선생의 여윈 얼굴을 바라보며 고이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여관 일층 로비에 있었다. 그밖에 다른 손님들의 모습은 없었다.
"어떻겠니?"
노구치는 다시 한 번 물어왔다.
"여동생한테 거짓말을 해요?"
"응, 지금만. 우선 지금만 그렇게 말하는 거야. 여동생은 아직 어려서 사실을 알면 어떤 충격을 받을지 알 수 없잖아?"
"하지만 언젠가는 알 텐데‥‥‥."
"그야 언젠가는 사실대로 말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도로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이런 여관에 와 있는지, 알아듣게 설명할 필요가 있잖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안 계신 것도 설명해줘야 하고. 우선 그렇게 해두고 나중에 여동생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쯤에 사실대로 말해주면 좋지 않을까?"
고이치는 고개를 숙이고 양쪽 손가락을 꼈다 풀었다 했다.
노구치 선생님이 하는 말은 알아들었다. 시즈나에게 사실 그대로 말한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슬픈 사실을 나중에 말하는 것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은 고이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건, 어차피 말할 거라면 언제 하건 마찬가지라는 식의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쓰시마 선생님이 여동생 옆에 계시니까, 잠이 깨면 그렇게 말해달라고 할 생각이야. 그래도 괜찮겠니?"
쓰시마는 시즈나의 담임선생이었다. 둥근 얼굴의 여선생이었다.
"다이스케는 어떻게 해요? 그 애한테는 거짓말 못해요. 저렇게 이상해져서‥‥‥."
부모님의 사체를 목격한 순간부터 다이스케의 상태가 이상했다. 누군가 밀어주기 전에는 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무릎을 안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이 여관에 안내되어 왔을 때도 표정 없는 얼굴로 그저 걸음만 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도 방 한쪽 구석에서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다이스케가 말하는 것을 고이치는 지난 밤 이후로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이제 곧 그쪽 담임인 오카다 선생이 오실 테니까 다이스케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 아무튼 지금은 여동생에게 어떻게 말할지 정해둬야지."
고이치는 애매한 심정인 채로 고개를 뜨덕였다. 생각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내일부터. 아니, 당장 오늘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답 따위는 없었다. 머릿속은 태풍이 휩쓸고 간 뒤처럼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서 뭔가 생각하고 결론을 내려준다면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지?"
"네."
고이치는 대답했다.
"어, 마침 나오는구나."
노구치 선생님의 시선이 고이치의 등 뒤로 향했다.
고이치가 돌아보자 시즈나가 쓰시마 선생의 손을 잡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참이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두 가지 다, 집을 나올 때에 고이치가 대충 가방에 넣어온 옷들이었다.
쓰시마 선생은 노구치와 고이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어났기에 데려왔어요. 저어, 그건 어떻게 하시기로‥‥‥?"
"고이치 군도 좋다는군요. 그러니까 아까 했던 그 얘기로."
노구치는 쓰시마 선생에게 눈짓했다.
"알겠습니다."
여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쓰시마 선생님, 다이스케는요?"
고이치가 물었다.
"경찰 아줌마가 옆에 계시니까 괜찮아."
"오빠, 여기 어디야? 왜 이런 곳에 왔어? 아버지랑 엄마는?"
시즈나가 물어왔다.
고이치는 난처했다. 어떤 순서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시즈나, 있지. 너희 집, 어젯밤에 불이 났어‥‥‥."
쓰시마 선생의 말에 시즈나는 아직도 졸린 듯한 눈을 큼직하게 떴다. 너무 놀라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 기색이었다.
"너희들, 유성을 보러 갔었지? 응, 별똥별. 그래서 너희는 무사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좀 다치셨어."
"에엥?"
시즈나는 그 즉시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이 되어 고이치를 보았다.
"거짓말!"
"정말이야."
고이치는 말했다.
"불이 났어‥‥‥."
"그럼, 우리 집이 다 타버렸어? 이제 거기서는 못 살아?"
시즈나의 눈은 그새 붉어졌다.
"아냐, 다 탄 건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그래, 집은 남아 있으니까 걱정 마. 하지만 지금 바로 갈 수는 없고 한참 동안 여기서 지낼 거야."
"아버지랑 엄마는 어디 있어?"
시즈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말한 대로 좀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가셨어."
"에엥~."
시즈나는 찡그린 얼굴을 고이치 쪽으로 향했다.
"큰오빠, 어떻게 해?"
고이치는 여동생을 달래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여기서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불안에 빠진 건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역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때, 다시 한 사람. 그에게 다가온 인물이 있었다.
"잠깐 괜찮겠습니까?"
고이치는 얼굴을 들었다. 가시와바라였다. 그는 두 선생에게 말했다.
"고이치 군을 잠깐 데려가고 싶은데요. 지금부터 현장 검증을 하기 때문에 입회해달라고 하려고요."
"지금요?"
노구치가 높직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고이치가 거의 한숨도 못 잤는데요."
그 말을 듣고 가시와바라는 고이치를 내려다보았다.
"힘들겠니?"
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나, 갈 거예요."
그러고는 쓰시마 선생 쪽을 보았다.
"제 여동생, 잘 부탁합니다."
"응, 걱정하지 마라."
"오빠, 어디 가?"
시즈나가 물어왔다.
"집에 갔다 올게. 뭔가 조사할 게 있는가 봐."
"나도 갈래."
"너는 여기 있어. 오빠가 먼저 보고 올게."
"에엥~."
"오빠를 힘들게 하면 안 되지."
쓰시마 선생이 타일렀다.
그것으로 시즈나도 마음을 돌린 모양이었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소리를 해왔다.
"선생님, 병원은 어디예요? 엄마랑 아버지한테는 안 가요?"
"그건 좀 더 있다가."
쓰시마 선생이 달래주는 말을 들으며 고이치는 그 자리를 떴다.
여관 앞에서 가시와바라와 함께 경찰차에 탔다. 이걸로 두 번째였다. 전부터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모양새로 그 바램이 이뤄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좀 잤니?"
가시와바라가 물어왔다.
고이치는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긴 그렇겠지.'
형사는 중얼거렸다.
양식당 <아리아케> 앞에는 경찰차가 몇 대나 서 있었다. 주위에는 로프가 둘러쳐진 채였다. 간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이제는 구경꾼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얹은 남자와 마이크를 든 여자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고이치는 당분간 뉴스 방송은 시즈나에게 보여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차에서 내리자 경관들이 고이치를 둘러싸다시피 하고 이동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경관과 형사들이 와 있었다.
지난번에 본 백발 머리의 형사가 다가왔다.
"자꾸 오라고 해서 미안하다."
고이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자마자 이런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집 안을 좀 돌아볼 수 있겠니? 뭔가 평소와 다른 게 있으면 어떤 작은 것이라도 우리한테 좀 일러줬으면 좋겠는데."
"네."
고이치는 대답했다.
그 작업은 식당 입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테이블 사이로 천천히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솔직히 말해 고이치는 뭔가 다른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찾아낼 자신이 없었다. 식당도 그렇고 집 안도 그렇고. 그다지 주의 깊게 관찰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유키히로는 이따금 마음 내키는 대로 테이블의 배치를 바꾸곤 했지만, 고이치는 그런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일도 있었다.
"카운터 안은 어떻지?"
백발 머리가 물어왔다.
고이치는 카운터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 조리기구며 조미료 등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특별히 마음에 걸리는 점은 없었다.
"너희 식당에는 들고 다니는 금고 같은 건 없었니?"
"금고요?"
"매상금 넣어두는 거 말이야."
"아아,"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상금은 저기 넣어둬요."
카운터 안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30센티미터 남짓한 크기의 네모난 알루미늄 통이 놓여 있고, 매직으로 '카레가루'라고 적혀 있었다.
"저 통 말이야?"
"네."
백발 머리의 형사는 알루미늄 통을 끌어당겨 장갑 낀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몇 장의 지페와 동전이 들어 있었다.
"으음, 이런 곳에‥‥‥."
"아버지가 금고 같은 건 아무 소용없댔어요."
고이치는 말했다.
"도둑에게 돈이 여기 있다고 가르쳐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백발 머리의 형사는 다른 형사와 서로 마주 보더니 통 뚜껑을 덮었다.
카운터 옆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이치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장소가 된 부모님의 침실 문이 보였다.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뒷문 쪽을 좀 봐줄래?"
백발 머리가 말했다.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이고 구석의 문을 열었다. 좁은 통로가 있고 그 끝에 뒷문이 보였다. 목제 문이고, 당연히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뒷문 바로 앞에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투명한 비닐 우산 한 개가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고이치의 눈이 거기에 멎었다.
"왜, 뭔가 이상해?"
형사가 물어왔다.
"저 우산, 우리 꺼 아니에요."
고이치는 말했다.
"그래?"
형사는 양동이로 다가갔다. 하지만 우산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알지?"
"저런 우산, 우리는 아무도 쓴 적이 없고. 거기 우산을 넣어두면 양동이 쓸 때 불편하다고 아버지한테 혼나니까 우리는 절대로 거기에 뭘 넣지 않아요."
백발 머리의 형사는 양동이 옆으로 비켜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형사를 손짓으로 불러 귓가에 뭔가 속삭였다.
이후에 계속해서 집 안도 둘러보았지만 그밖에 별다른 발견은 없었다. 이층 방은 간밤에 고이치와 동생들이 빠져나간 그대로였고. 아버지와 어머니 방은 찬찬히 관찰해볼 여유가 없었다. 방바닥에 묻은 피의 흔적만 그의 망막에 낙인처럼 찍혔을 뿐이다.
고이치가 여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점심때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방에 들어가보니 시즈나는 큼직한 탁자에서 색종이 접기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쓰시마 선생도 있었다. 다이스케는 장지문으로 나누어진 옆방에 있는 모양이었다.
"아, 큰오빠. 어땠어? 우리 집, 남아 있었어?"
"남아 있어, 내가 말했지?"
고이치는 여동생 곁에 자리를 잡았다.
"고이치 군, 잠깐 괜찮겠니? 전화 좀 하고 왔으면 좋겠는데."
쓰시마 선생이 말했다.
"네."
고이치는 대답했다.
쓰시마 선생이 나간 뒤, 고이치는 탁자 위를 보았다.
"뭐하고 있어?"
"학이야, 종이학 만들어, 엄마랑 아버지한테 줄 거야."
시즈나는 노래하듯이 말하더니 정말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그만 손으로 꼼꼼이 만들어가는 종이학을 빤히 바라보는 사이에 슬픈 생각이 다시금 고이치를 덮쳤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가슴속에서 크게 팽창해서 마침내는 마음의 벽을 무너뜨렸다.
고이치는 시즈나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녀의 손안에 있던 종이학이 구겨졌다.
시즈나는 두려움과 놀람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큰오빠‥‥‥."
"소용없어. 그런 거 만들어도."
"응?"
고이치는 벌떡 일어서더니 안쪽 장지문을 열었다.
"앗, 안 돼. 작은오빠가 아파서 누워 있어."
분명 다이스케는 이불을 둘러쓰고 있었다. 고이치는 그 이불을 벗겨냈다. 다이스케는 놀란 표정으로 거북이처럼 팔다리를 오그렸다.
고이치는 시즈나의 손을 움켜잡고 다이스케 옆으로 끌고 갔다.
"손 아파."
시즈나는 울먹였다. 그런 여동생의 뺨을 오빠는 두 손으로 감쌌다.
"시즈나, 잘 들어. 아버지도 엄마도 이제 없어. 죽어버렸어."
시즈나의 커다란 검은 눈망울이 데구르르 움직였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아냐, 불이 난 게 아니라고! 사실은 누군가 아버지랑 엄마를 죽였어. 나쁜 놈한테 살해됐어!"
"거짓말! 아니야, 큰오빠. 진짜 미워!"
시즈나는 고이치의 손을 뿌리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팔다리를 내둘렀다. 엉엉 울면서 마구 내둘렀다.
그런 시즈나를 고이치는 위에서 감싸듯이 꼭 끌어안았다.
"싫어, 싫어."
어린 여동생은 여전히 버둥버둥 몸부림을 쳤다.
"이제 우리뿐이야‥‥‥."
고이치는 쥐어빠듯이 발했다.
그때, 지금껏 딱딱하게 굳어 있던 다이스케가 돌연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슴에 고였던 것을 한꺼번에 토해내듯이 격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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